병조판서공(兵曹判書公) 하 왕(河왕) 12세손
 

 

선조의 휘는 왕이요. 군사공이며, 목옹공(木翁公)선조의 맏 아드님으로서 시조 사직공의 12세손이시다.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시고 과거에 올라 지봉산군사(知鳳山郡事)직을 역임하시었고, 남평문보(南平文譜)를 작성하였고,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내셨다.

세종  을사 (世宗乙巳) (1425년) 윤 7월에 돌아가시니 예조(禮曹)에서 부의(賻義)를 보내어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고 왕조실록에 나타나 있다. 묘소는 명기한 문헌이 없어 알 길이 없다.
배위는 안동권씨이고, 묘는 애석하게도 실묘이다. 아드님은 세분으로서 장자는 현감공으로 휘는 정수(程秀)이며, 목천(木川)현감을 역임하셨고, 차자는 충순공(忠順公)으로 휘는 정준(程俊)이시고, 배위는  창원 공씨 (宣人 昌原 孔氏)이시다.
삼자(三子)는 군수(郡守)공으로 휘는 정발(程拔)이시고 자(字)는 선숙(宣淑)이시다. 봉산군수로 지내시다가 단종이 물러남을 보고 벼슬을 버리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셨다.

배위는 숙인 함안 조씨로서 함안 평광(平壙) 안산(安山)신좌(辛坐)로 합봉되어 있다.  정수 아드님 형제분 중 장자  유손(有孫),차자 성손(成孫)이시다. 정발 아드님 한분은 형산이시다.

※묘소는 실묘지만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 목옹공할아버님 묘소 아래에 누구의 묘인지 몰라도 큰 묘가 모셔져 있는데 문중 어른들도 판서공(왕)할아버님의 묘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