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좌승지 하정서(河呈瑞) 선조님의 묘소 앞쪽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환희1구 산101번지


 
하정서(河呈瑞) 13세손

 

증직(贈職)으로 영의정 (領議政)을 제수 받은 하보(河溥)선조님의 외동아드님이시며 공의 휘는 정서(呈瑞)이며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지냈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 左承旨)로 증직(贈職)되셨다
공께선 굳세고 씩씩한 모습과 총명한 지혜로 집안에 전해지는 풍범(風範)을 이어 몸을 다스리되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고 집안을 다스리되 충신(忠信)을 주장으로 삼으셨다 글을 읽음에 욕심을 내지 않아 차례를 뛰어넘지 않고 옛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아내셨으니 이는 주자(朱子)의 이른 바 글을 숙독(熟讀)하여야 귀함이 되는데 많이 읽으면 자연히 뜻이 깨우쳐진다 것을 준칙으로 삼으시고 정주학(程朱學)의 참뜻을 궁구(窮究)하신 한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현란한 경지에 통달하여 젊은 나이에 과거에 응하여 급제하였고 여러번 승진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 監察)에 이르렀으며 좌승지(左承旨)로 증직(贈職)되셨다.

그러나 벼슬길을 피하고 향리에 돌아가 솔숲으로 더위를 물리치고 대숲으로 청풍을 맞이하니. 문장이 봄철의 꽃과 같고 담화(談話)가 꽃다운 난초와 같아 여는 문장가가 흉내낼 바 아니로되 진실로 가득 차면 줄고 겸손하면 보태어진다는 생각으로 더욱 더 가다듬으셨다,
부지런히 선행(善行)을 쌓고 어진 일을 더함에 여념이 없었으니 당시의 젊은 인재들이 책상자를 짊어지고와 스승으로 섬길새. 공께서 늘 말씀하시기를『학문함의근본 뜻은 실천함에 있으니 배우고 행하지 아니 하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마땅히 우임금(禹王)의 시간을 아낀 일과 안자(顔子)의 「두가지 아니 함」으로써 학문하여 나아가는 벼리(벼領)를 삼아 한 순간의 끊임도 한일에 의 경거망동도 없게 한 연후에야 허물이 적게 되리라.』하셨고 제자리의 재질에 따라 훈육을 맞추어 하시니,빈속으로 왔다가 지덕을 채워 돌아간 이가 많았다,
간간이 원근 명현들과 더불어 물소리 산 풍광을 벗삼아 노닐며서 기화요초와 기암괴석을 완상하고 술 한잔에 시 한 수를 지으시던 맑고 한가한 모습에는  한점의 먼지도 묻지 않았었다. 묘는 서강이하(西江二下)의 선고 묘 아래에 모셔졌으며 마나님은 증 숙부인(贈淑夫人) 보성 오씨(寶城吳氏)이신데 묘는 합봉이다.

※그동안 충북 청원군 옥산면 환희 1구 산101번지에 모셔저 계시던 증 영상공 보(溥)선조님과 아드님이신 승정원좌승지 정서(呈瑞)선조님묘소가 있는 주위의 산이 너무 험준하고 묘사 지낼때 마다 길이 없어 일일이 길을 내어야 만 갈수 있는 그런 지역으로 후손들이 아주 어려움을 느껴  부득이 지난 2006년 9월 20일 후손들이 살고 있는 충북 청원군 강내면 석화리 257번지로 이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