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공 휘(諱) 치(治)선조님의 묘소 : 전남 화순군 동북면 연월1구 동북향교 옆

하치(河治) 14세손

譯文                                

공의 휘(諱)는 치(治)요 자는 평중(平仲)이니 참의공(參議公)휘 금(襟)의 넷째 아드님이다 정읍(井邑)에서 동복(同福)으로 이거(移居)하였는데 효행으로 벼슬을 하셨다. 성종 중종 때에 세 고을 원님을 지내셨는데 이르는 곳마다 명성 높은 공적을 세우셨고 여산(礪山)에는 유애비(遺愛碑)를 남기셨다
마나님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집의(執義)수일(粹一)의 따님이요 승지(承旨)윤호(尹浩)의 외손인데. 공과 함께 동현(同縣)고소치(姑蘇峙) 임좌(壬坐)에 쌍봉으로 묻히셨다. 아드님 진사(進士) 휘 자담(自澹)은 효행으로 칭송받으셨다, 손자님은 휘 서정(瑞呈)이요 증손은 사마(司馬) 휘 한(漢)과 정(渟)이고 현손(玄孫) 휘 언식(彦湜)은 참봉(參奉)이었고 휘 언의(彦의)는 진사(進士)이었으며 五세손 휘 대붕(大鵬)은 진사 휘 대표(大豹)는 참군(參軍) 휘 대란(大鸞)은 공조정랑(工曹正郞)휘 대인(大仁)은 생원(生員) 휘 대추(大추)는 참봉이었으며 六세손 휘 윤구(潤九)는 진사로 문과에 올라 벼슬이 전적(典籍)이었는데 세상을 개탄하며 지조와 절개를 지키셨고 七세손 휘 진선(晋善)은 문과에 등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냈고 六세손 휘 득남(得男)과 八세손 휘 진룡(振龍)은 다 무과(武科)에 오르셨다 이밖의 많은 분들은 기록할 수 없다.

가승(家乘)이 병란에 불타 공의 사적(事蹟)이 잃어졌으므로 생년과 돌아가신 날짜를 알지 못하니 남기신 복록(福祿)이 다하지 않아 자손이 번창하고 벼슬이 이어졌다. 자손 휘 자담(自澹) 한순(漢淳) 언의(彦의) 대표(大豹)는 모두 효행으로 읍지(邑誌)에 실리었고 휘 대붕(大鵬) 마나님 오씨(吳氏)와 휘 대란(大鸞) 따님께서 열부(烈婦)로 정려(旌閭)되시니 이에 가히 공의 집안의 올바른 행위의 내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명(銘)한다

옹기봉(瓮器峯)은 드높고 동강(桐江)은 양양(洋洋)한데

아늑한 곳 무덤 있으니 효자 계신 곳이로소이다.

부모님 의향을 한결같이 어김 없으셨고

부모님 계신 앞에선 빠른 말과 성내는 빛이 없었으며

꾸짖는 소리가 천첩에 이른 일도 없었다,

형제간에 화락한 즐거움이 있었고 처자들에 슬픈 걱정이 없었다 부모님 상(喪)을 당하여서는 애통하여 죽만 잡수시었으매 효행으로 천거되어 세 고을 다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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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 휘 자담(自澹)께선 능히 가법(家法)을 이어 부모님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고 어버이 돌아가심에 애통하심이 지나쳐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하였다.  
휘 결선조님의 손자이고 휘 금 선조님의 아들이다  할아버님은 여산군수(礪山郡守)를 지내셨으며 그 후손은 정읍과 순천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