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관교리 하옥(河沃)15세손

譯文
옛 홍문관 교리 하공의 묘가 함주(咸州) 법수(法守)의 어유동(漁遊洞)에 있는데 이제는 공의 시대가 4백년이나 지나니 옛날에 묘비가 있었으나 세대가 점점 멀어지고 풍우에 마멸되어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공의 후손 된 자가 서로 차탄하고 힘을 모아 개수하려 하는 터에 후손 도호(道鎬)가 날를 산방(山房)으로 찾아와 글을 청하매 그 뜻이 너무나 간곡하므로 사양하지 못하여 그 행장을 살펴보고 쓰노라. 공의 휘는 옥(沃)이요 자는 계경(啓卿)이며 하씨인데 관향은 진양이니 고려 사직 휘 진(珍)이 시조이시다 세대가 전해져서 휘 즙(楫)진천부원군 시호 원정공(元正公)과 휘 윤원(允源) 진산부원군 부자님에 이르러 모두 고려의 명신이 되셨는데. 이 진산부원군이 五代祖이다 고조님 휘 자종(自宗)께서는 병조판서를 지냈고 좌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증조님 휘 왕(왕)은 군사를 지냈고 조부님 휘 정발(程拔)은 군수 황고님 휘 형산(荊山)은 사간을 지냈셨다. 어머님은 숙인 경주박씨(慶州朴氏)와 숙인 진양 정씨(晉陽鄭氏)요 공은 1462년에 출생하셨다.

글방의 다닐 때에 놀기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므로 사간공께서 노하여 매질하여 피를 흘리게 하고  한탄하며 말씀하시기를 「옛 사람이 이르되 부자간은 선(善)을 재촉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내 한 아들을 두었거늘 도리어 정을 상하게 하느냐」하고 오뇌하여 마지 않으시기에 공께서 가만히 아버님 한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책하여 말씀하기를「내가 배우지 않음으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으니 다시 무슨 낯으로 세상에 서겠는가?」하고 드디어 뜻을 가다듬고 공부하되 남이 하나를 하면 당신은 백배나 힘을 쏟아 매양 글을 읽을 때 밤중에 이르되 졸음이 침노하면 수염을 뽑으며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 여러 서적을 널리 공부하여 말을 하면 문장을 이루게 되었다,

조순(趙舜)과 더불어 서로 동등하였는데 조순이 먼저 과거에 급제하였으므로 공이 돈수하여 말하기를「조순도 급제를 하였거늘 나라가 할 수 없겠는가?」하셨다,
1486년에 진사가 되고 1506년에 문과 갑과에 급제하여 몇 년 안 되어 홍문관 교리 지제교에 오르셨으니 공이 성취하여 출세함은 오로지 독실한 소치였던 것이다 성품이 맑고 곧아서 구차하지 않아 선비의 도가 우아하며 행적이 현저하였다. 함안에 명관팔급제(明館八及第)가 있는데 공의 부자분이 참여하여 있어 지금도 미담으로 전해진다. 돌아가시니 묘는 어유동 유좌이다.

배위 숙인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현감 돈흡(敦洽)의 따님인데 묘는 쌍봉이요 또 한 분 숙인 진양정씨(晉陽鄭氏)의 묘도 어유동에 있다. 세 아드님을 두 었으니 서린(瑞麟)자공(自공) 서장(瑞獐)이다 따님은 신재 주세붕(周世鵬)에게 출가하였다, 손자는 만기(萬期)요 증손은 종해(宗海)다
이어서 명(銘)한다

푸른 물 동으로 흘러 함안에서 감도는데

돈독함은 특이한 바탕 낳아 학문을 수립하고 행실도 닦았네

사물은 바뀌고 별 자리도 옮겨져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거듭 비석을 세우니 마침 정월달이고

벼슬도 있고 덕망도 있으니 거북 투구 마땅하네

그 아름다움 나타내기 모든 사람의 눈길 모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