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공 하팽노(河彭老)선조님의 설단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우록리 영당곡 을좌

하팽노(河彭老) 16세


선조님은 참판공 諱 효명(孝明)할아버님의 증손자이시며 증 이조참의(贈吏曹參議)공 휘 징(澄)선조님의 장남이시다  공의 휘는 팽로(彭老)인데 1490년에 태어나셨다. 총명한 재질로 공부에 힘써 생원 진사시험에 다 합격하니 명망이 일찍부터 높았다. 중종조(中宗朝)에 알성과(謁聖科)에 3등으로 뽑히셨으나. 왕이 방(榜)을 걸 때 한 사람을 덜게 하였으므로 공께서 빠지고 마니, 이로 인하여 과거 보는 일을 그만두셨다.

어느날 왕이 시신(侍臣)에게 묻되「하 아무리 문명(文名)을 내 진작 들어 아는데 어찌 과거 소식이 없는고?」하니 대답하되「지난번 알성시(謁聖試)때 저거함을 당하여 과거를 포기했다 하더이다」하였다, 왕이 아깝다 여겨 공의 이름을 망기(望記)에 올리게 하여 세 사람을 다 뽑았다 벼슬이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 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 간성(杆城)김제(金堤)군수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 청주판관(淸州判官)장단부사(長湍府使)에 이르렀고 중종 때 정국일등공신이 되시니 선고에게 이조참의(吏曹參議)의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손자 휘 태수(태壽)는 인품이 엄정하고 지조가 청고(淸高)하여 남이 감히 사사로이 간섭하지 못하였다.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모두 굳이 사양하고 만년에 문의 우록리(文義友鹿里)에 사시면서 마을 이름을 삼성동(三省洞)이라 하고 못을 파서 연(蓮)을 심고 그 옆에 작은 정자(亭子)를 지어 협경(狹鏡)이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자호(自號)를 관면(慣眠)이라 하고 일생을 마치었다.

 묘소: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우록리 영당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