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좌랑공(戶曹佐郞公)하맹인(河孟仁)16세손

공의 휘는 맹인(孟仁)이요 자는 이원(理元)이다 시조 휘 진(珍)은 고려 사직(司直)을 지내셨고 누대(屢代)를 내려와 휘 즙(楫)이 계시어 호를 송헌(松軒)이라 하였는데 진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원정(元正)이란 시호를 받으셨다, 아드님 휘 윤원(允源)또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는데 호를 고헌(苦軒)이라 하셨다. 그 아드님 휘 자종(自宗)은 호를 목옹(木翁)이라 하였는데 이 분이 공의 5대 조부님이시다

고조님 휘 결(潔)은 조선조에 벼슬하여 대사간(大司諫)을 지내셨는데 이 분이 문효공(文孝公)의 아우님이시다 증조님의 휘는 금(襟)인데 덕망으로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셨다. 조부님 휘 신(紳)은 학문과 행실이 다 두드러져서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태종께서 남해현(南海縣)을 베푸실 때 공이 문무의 재(才)를 겸비하엿기로 천거되어 남해 현령(南海縣令)이 되셨으니 이는 나라에서 지정한 8대 성씨의 하나인 우리 하씨의 면목에 맞는 일이었다. 공이 처음 남해에 와서 먼저 향교와 관청을 세웠고 자손들이 거기에 눌러 살게 되었다. 선고의 휘는 자파(自坡)인데 문과에 올라 벼슬이 서윤(庶尹)에 이르렀다. 선비(先비)님 숙인(淑人)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사인(士人)승황(承黃)의 따님인데 1458년에 공을 낳으셨다.

공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높이 나타냈는데 효우스럽고 인자하고 어질며 독서하고 사람 응대함이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셨다. 아 공은 뛰어난 덕과 재주를 타고나 시례(詩禮)의 가문에서 자라셨으니 그 때 하신 일로 시대에의 도움이 되고 세상에 모범이 됨이 많았겠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문적(文籍)이 사라져 전해짐이 없으므로 겨우 족보에 실린 대로 대략을 위와 같이 적었다.

그러나 어찌 반드시 깃털을 다 보아야만 봉황인 줄을 안다 하리요? 벼슬은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며 1540년에 돌아가시어 석평(席坪) 청룡등(靑龍嶝) 신좌(辛坐)에 묻히셧다 마나님 공인(恭人)용궁 김씨(龍宮金氏)는 진사(進士)창수(昌壽)의 따님인데 같은 곳에 묻히셨고 마나님 공인(恭人) 장수 이씨(長水李氏)는 순경(舜卿)의 손녀인데 쌍봉으로 묻히셨다. 공은 두 아드님을 두었는데 맏아드님 휘 윤호(潤湖)는 승정원 좌승지였고 둘째 아드님 휘 계호(啓湖)는 장사랑(將仕郞)이었다 공의 자손 10여 세대(世代)가 문무(文武)로 성취한 분이 많으니 이는 하늘이 반드시 복록을 후손에게 돌리어 선대의 빛을 회복하게 하심이어니 하씨의 경복(慶福)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