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공(參奉公) 하박(珀)16세손

공의 휘는 박(珀)이요, 자는 온가요, 성은 하씨요, 본관은 진양이다. 송헌 선생 원정공 휘 즙(楫)과 진산 부원군 휘 윤원(允源)은 공의 현조이신데, 공으로부터의 6.7세 위이시다. 청백리공(淸白吏公) 휘 맹질의 증손님이시요, 우시직공(右侍直公) 휘 주(澍)의 손자님이시요, 전력부위공(展力副尉公) 휘 구년(龜年)의 아드님이시요, 관서 강 숙경(姜叔卿)님의 외손이시요, 한훤당 김선생(寒喧堂金先生)의 맏사위님이시다. 공께선 대대로 청고(淸古)하였던 집안에 태어나시어 대현(大賢)을 얻어 의지하시고 독실하게 수행(修行)하시어서, 내외에 성예가 높았다. 1498년에 진사(進士)가 되시었는데, 이 해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 선생께서 원방으로 귀양가시어서, 공께서 아예 벼슬할 마음을 버리시었다. 천거로 남부 참봉(南部參奉)에 임명되시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시었다.

1504년에 김 선생께서 배소(配所)에서 화를 당하시었으므로, 공께서 김 선생의 여러 아드님과 동문의 이 장배. 정 응상공(李長培)으로 더불어 영구를 받들고 돌아가 현풍(玄風)에 장사(葬事)하셨으니 : 이사실이 경행록(景行錄)에 실려 있다. 공께서 불행히 일찍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기묘사화가 일어나, 아우님 부사공(府使公)께서 김 동천(金東泉)을 집에 숨겨 주신 것이 죄가 되어, 집안이 적몰(籍沒)되었으므로, 이에 공의 행적의 시종의 기록이 깡그리 없어져 고징할 길 없게 되었으니, 아 이를 차마 어찌 말할 수 있으리요? 마나님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신데, 소생이 없다. 공께서 창녕방 동산 묘좌(昌寧坊洞山卯坐)에 묻히시고, 마니님께서 그 아래에 묻히시었다. 공의 방계 후손(傍系後孫)이 산소를 수호하는 바, 나에게 비문을 청하므로, 이에 명(銘)한다.


근원 있는 바름에 길은 훤히 열렸는데,

일찍 돌아가시어 뜻을 펴지 못하셨으니,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