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향선사(一鄕善士) 하호(濩) 16세손

 

공의 휘는 호(濩)요, 자는 태화(太和)이니, 기묘명현(己卯名賢)이신데, 사람들이 일향선사(一鄕善士)라 불렀다. 현감공 휘 척(滌) 할아버님의 후손이며 군수공 휘 맹질선조님의 증손자이시다 세조 병술년 곧 1466년에 나시고 1514년에 돌아가시어 창녕(昌寧) 서쪽 옥천(玉遷) 선비님 묘 옆에 묻히시었다.

공께서 천품이 고결하시어 범속한 사람들과 매우 다르시었다. 젊으셔서 부모님을 섬기심에 효도하시고, 상(喪)을 당하셔서는 슬퍼하고 공경함을 다하시었다. 아무님 한 분이 계셨는데 우애가 심히 두터우셨고, 백숙부님을 섬기심에 공경하고 순종함을 다하시었다. 집에 거하심이 엄히하시었고, 제사를 받으심에 예로써 하시었다.

점필재 김 종직 문하께서 배우시어 당시 선비들의 추앙하는 바 되시었고, 널리 백가서(百家書)와 역사 책에 통달하시었는데 노자(老子), 장자(莊子)에 더욱 조예가 깊으시었다. 또, 시문(詩文)이 청신하고 고묘(高妙)하였다. 한 번 진사 향시(進士鄕試)에 응하셨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신 뒤로는 과거를 보지 않으시고, 호수와 산에서 시를 읊으시며 그 낙을 즐기시다가 아들을 두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리요? 천도(天道)가 항상선인(善人)에게 편듦을 믿지 못하리로다.

공의 종제님 홍(泓)의 아드님 항(航)을 후사로 삼으셨다. 마나님 강씨(姜氏)는 증 찬성(贈贊成) 원범(元範)의 따님이신데, 관찰사 김 안국(金安國)이 공의 여막을 방문하고 조정에 알리어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게 하였고, 관포(灌圃) 어 득강(魚得江)이 묘지(墓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