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공(進士公) 하만리(河萬里)18세손

공의 휘는 만리(萬里)요 자는 호연(浩然)인데 선조(宣祖) 시대에 진사가 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얽매이지 않는 큰 뜻이 있어 사소한 예절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가정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또 성품이 산수(山水)를 사랑하여 영리(榮利)에 급급해하지 않으셨다.

나아가고 처함에 한결같이 옛 어른들 같이 함을 스스로 기약하였고 의를 행하여 굴하지 않고 여러 번 권세있는 자들의 뜻을 거스르니 원근의 선비들이 그 풍채를 사모하였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시에서 이르기를 「마음 속에 만물이 갖추어져 있는데 깨달아 보니 나무도 이니요  또한 재(재)도 아니네 매양 홀홀히 다른 데로 이끌려감이 많으나 반드시 항상 몸에 붙여 오게하라」하셨으니 스스로를 수양하는 독실한 공부가 이와 같이 시에 나타나 있다.

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와 일찍이 벗으로 사귀었는데 감호(鑑湖) 가 합천을 다스릴 때 읍(邑)의 폐단을 걱정하거늘 군인(郡人)들이 모두 말하기를 하모(河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공이 바른 방도를 일러주어 바르게 다스리니 군민들이 지금도 칭선(稱善)하고 있다 유고(遺稿)와 행장록(行狀錄)이 불행히도 타 없어진 부분이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