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공(縣監公) 하종해(河宗海)18세손

공의 휘는 종해(宗海)요 자는 사용(士容)이요 호는 둔옹(遯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한 재질이 있으시어 문장이 뛰어났다. 1585년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봉정대부(奉正大夫) 현풍 현감(玄風縣監)을 지낼 때  백성 다스림을 인(仁)으로써 하고 몸가짐을 의(義)로써 하시니 온 경내가 감화하였다. 1583년에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본직(本職)현풍 현감과 대구진관병마절제도위사(大邱鎭管兵馬節制都尉使)를 받아 다스림에 공적이 현저하였다.

국사(國事)에 어려움이 많아짐을 보고 시(詩)를 지어 꾸짖어 이르기를「만고의 강상(綱常:三綱과 五常)은 휘원(輝遠)의 붓에 달렸고 100년의 종사(宗社)는 이이첨(李爾瞻)의 손아귀에 달렸네 승상이 죄 있으매 만 번 죽어 마땅하네 이유(李由)는 무슨 일로 또 삼천수(三川守)가 되었던고?」하셨다. 그리고 과감히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자연에 뜻을 붙이고 경전(經傳)에 유념하며 선대를 예로써 받들고 돈족(敦族)을 은혜로써 하신 바 이 일이 합천읍지의 절의편(節義篇)에 실려있다. 행장(行狀)과 유적(遺蹟)은 불행히 화재를 당하였으니 통감할 일이다 합천 야로 현내면 저동촌 오른편 해좌(亥坐)에 장사되었다. 배위 숙인 안동권씨(安東權氏)는 여겸(汝鎌)의 따님인데 묘는 합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