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과공(副司果公) 하진해(河進海)18세

공의 휘는 진해(進海)요 자는 여용(汝容)이요 호는 성헌(醒軒)이다 1586년 1월 28일 현내면 구정리 자택에서 태어나셨다.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와 병절교위 권지훈련원 봉사를 지내다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부귀를 뜬 구름같이 여기며 시조(市朝)를 멀리 하고 산수(山水)를 즐기셨다.

부모상을 당하여 시묘살이 3년에 죽으로 연명하고 애통함이 도에 넘쳐 여위어서 뼈만 남으니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집에서는 종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고을에 나가면 벗들이 신용하였다. 임종에 정침에 옮기라 명하시고 이연(怡然)히 돌아가시니 이느 그 천성이 그리하게 한 것이었다. 1653년 10월 24일에 돌아 가시어 현내면 묵촌리 동박동 경좌에 묻히셨다.

마나님 영인(令人)하산 조씨(夏山曺氏)는 무과 경문(慶文)의 따님이요 참봉 풍양 조교신(趙奎新)의 외손이다 출가하기 전 아버님 병환에 손가락을 끊으셨고 출가하여서는 시부모님께 효성을 다하였으며 모범된 부인 행실로써 아이들을 잘 기르셨다 1585년 3월 7일에 태어나서 1645년 12월 24일에 돌아가셨다. 묘는 합봉이고 석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