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랑공(將仕郞公) 하경수(河景洙)20세손

공의 휘는 경수(景洙)요 자는 윤지(允之)요 호는 돈재(돈齋)이니 묵와공(默窩公) 휘 득용(得龍)의 아드님이요 진사공 휘 만리(萬里)의 손자이다 벼슬은 장사랑 훈도에 이르렀는데 평생의 사업은 한결같이 소학을 기준으로 삼고 선대의 가르침을 받들어 이어서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함이었다 조부 진사공은 권세 있는 집안을 거스린 뒤부터 그 땅에 살기를 싫어하여 고성(固城)구만면 와룡동으로 이사하여 가정을 다스리고 세상을 피하여 살면서도 걱정하지 않았다.

일찍이 새벽 닭 울음을 듣고 시를 지어 이르기를「가슴 속에 맑고 깨끗한 기운 품고 첫닭 울음 소리 들으니 사소한 속에 요순(堯舜)과 도척(盜척)의 사는 데가 나뉘네 천고의 명사(明師) 하늘과 사람이 이미 성현의 글에 분변되었음을 바로 알리라」라고 하였다.
와룡 이현(李顯)과 경암(警菴) 이덕구(李德耉)와 독오(獨吾) 황협(黃협)과 참봉 문익선(文益善)과 더불어 도의교(道義交)를 맺었는데 와룡 이현(李顯)이 시로 이르기를「벼슬로 이어 온 오랜 집안의 자손이 궁벽한 이 마을에 사나니 그대는 연당공(蓮塘公)의 7세손이로다 난초는 그늘을번성하게 하지 않고도 향취는 다함없고 용(龍)은 자취를 감추어도 자연히 흔적을 남기네」라 하였다

경암 이덕구(李德耉)는 초은가(招隱歌)에서「출처(出處)함과 행장(行藏)을 한결같이 옛 문집 한 권이 있는데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이 행장을 지었으며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이 문집 서문을 지었다 배위는 진양정씨(晋陽鄭氏)인데 참봉 시학(時鶴)의 따님이요 생원 만기(萬基)의 손녀이며 밀양 박시엽(朴時曄)의 외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