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군공(護軍公) 하대유(河大猷)23세손

공의 휘는 대유(大猷)요, 자는 몽징(夢徵)인데, 1677년에 진주 서쪽 신풍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기우(氣宇)가 활달하며, 굽힘 없는 원대한 뜻이 있어 조그마한 일에 구애하지 않으셨다. 장성함에 두루 명석(名碩)들을 찾아 과거 공부를 하였으며, 게다가 무술까지 능하여 171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의 부호군이 되셨다.

1723년 역신이 모반하여 나라가 크게 어지러웠을 때 공이 드디어 분발하여 칼을 빼어 들고 크게 소리쳐 말씀하기를 「내가 적의 머리를 베지 못한다면 어찌 세상에 설 수 있으리요?」하시고 힘을 다해 임금을 호종한 지 수 년 만에 온갖 어려움을 겪고 싸움에 이겨 공을 세우셨다. 임금은 이를 특별히 사랑하여 은방옥도(銀方玉刀)를 하사하고, 특별히 원종 이등공신에 녹권하고 호군을 제수하였다. 1730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54세였는데, 신풍리 영법동의 선고 묘 아래에 장사되셨다. 배위 두 분 중 영인 여주이씨(驪州李氏)는 만묵당 동규(東奎)의 따님이요, 영인 청송 심씨(靑松沈氏)는 사인(士人) 창서(昌瑞)의 따님이요 영의정 열(悅)의 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