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란공(秋瀾公) 하명관(河命觀)26세손

하군 대규(大圭)는 한 동네의 친구인데, 그 증조부님의 묘갈명을 나에게 청하면서 말하되, 「나의 증조부께서 글에 능하시어 과거장에서 명성이 있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신 채 향리의 자제들을 가르치셨다. 저술하신 글이 약간 있었는데 집에 불이 나서 책상자를 보전하지 못하여 다만 초상 때와 상제 때의 붕우(朋友)들의 제문 몇 편이 남았을 뿐이니, 이것으로 글을 써 주시기 바라노라」한다. 그 글을 읽어 보니 일렀으되, 「8세의 종손으로 제사를 삼가 받드셨고, 효도와 화목과 근면과 근신(謹愼)으로 문중의 모범이 되셨으며, 일을 처리하고 사물을 접함에 간격이 없으셨다」하였고, 또 일렀으되, 「순수하고 단아하시어 집에 계셔서는 수신제가(修身齊家)하시고, 향당에 계셔서는 충신(忠信)으로 행하시어 마음은 가을 물 같고 기품은 봄바람 같으셨다」고 하였고, 또 일렀으되, 「가르치는 말씀 순수함이 거문고를 뜯으며 술을 마시는 것 같으셨다」고 하였기, 이에서 그 전형(典型)을 보는 것과 같아서 드디어 글을 쓰노라.

공의 휘는 명관(命觀)이요, 자는 원술(元術)이며, 호는 추란(秋瀾) 또는 송오이다. 그 선조 원정공 휘 즙(楫)과 진산 부원군 휘 윤원(允源)께서 고려 때에 현달하였는 바, 조선조 때 현감 척(滌)께서 처음으로 창녕에서 사시었다. 그 후 군수 휘 맹질과 시직 휘 주(澍)와 별좌 휘 관(灌)과 옥계 휘 준의(遵義)와 매헌 휘 숙(潚)께서 또한 세상에 드러나셨다. 증조님 이하 3세의 휘는 응종(應宗), 필정(必晶), 치홍(致洪)이다. 공의 외조부님은 광주 김 광점(金光漸)이니 : 부원군 정의 후예이시다. 공의 탄생은 정조 임자(1792)년이요, 돌아가심은 철종 기미(1859)년 12월 27일이요, 묘소는 이방면 용배 안산 정(丁)좌이다. 배위 동래 정씨는 이범(履範)의 따님이시다. 아드님은 4남이니 : 휘 경방(慶邦)이요, 출계하신 경춘(慶春)이요, 경천(慶千)이요, 경필(慶弼)이다. 사위님 세 분은 조 경대(曺慶大), 윤 태하(尹泰夏), 이 계문(李啓文)이다. 휘 경방은 5남을 두셨으니 : 순병(淳秉), 의병(義秉), 진병(鎭秉), 치병(致秉), 구병(龜秉)인데, 순병 남이 글을 청한 사람이다. 이에 명(銘)하노라

창녕에 삼대성(三大姓)이 있는데, 하씨가 그 하나다.

어부정에서 풍월을 즐기고, 옥야의 집에서는 농사를 지으셨도다.

8대의 증손으로 정성껏 제사를 받드셨도다. 문장도 있고 또 덕행도 있으니,

그분의 평생을 즐거이 기술할 만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