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부 동래정씨(東萊鄭氏)

 

          하세진(河世晉)의  배위  지려
공의 휘는 세진(世晋)이요 자는 인보(仁甫)요 호는 죽오(竹塢)다. 1684년 11월 22일 묘시(卯時) 에 사직공 21세손 으로 야로면 구정리 집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온화하고도 묵중하며, 위엄 있는 거동이 엄연하고 준미하였다. 집에서는 효도하고밖에 나가서는 공손하였다. 부모님 상(喪)에 시묘살이 하시니,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속된 늙은이일지라도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또, 마을과 고을에서 모두 그 가풍을 흠앙하였으니, 이는 실로 어버이 섬김을 효성으로 하고, 몸 수양을 공경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임금에게 알려져 1756년 8월에 통정대부 교지를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교지를 받으셨다.

1758년 5월 13일에 별세하시니 향년 75세였다. 임종하실 때 정침으로 옮기게 하고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게 하며 집안 자질(子姪)들 남녀를 좌우(左右)로 차례 있게 자리하게 하신 후 이연(怡然)히 별세하시니, 이내 그 천성이 그러하게 한 것이었다. 야로 현내면 동박동 경좌에 안장되셨다. 남평 문응벽(文應壁)은 행장(行狀)을 짓고, 전 도사(都事) 전성 이종기(李種杞)는 묘표(墓表)를 지었다.

배위 동래정씨(東萊鄭氏)는 동평군(東平君) 종(種)의 7세손이요, 무과 두영(斗英)의 따님인데 1680년 9월 25일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어버이 사랑하는 정성을 천성으로 타고나서 아버님 목 종기 고름을 입으로 빨아 내고 하느님께 아버님 명(命)을 기도하시니, 하느님이 그 정성에 감동하사 달포 만에 완쾌하게 하였다. 시집와서는 시부모님을 잘 받들어 섬기는 데 효성으로써 하고, 혼정신성(昏定晨省) 절차를 예로써 하였다. 시어머님이 여러 해 병환으로 신고하면서 청하시는 것이 여름철 메추라기 고기라, 이에 목욕재계하고, 앞 들에 나가 기도하시니, 날아가던 메추라기 한 마리가 품안에 들어오기로 장만하여 드렸더니, 병환이 곧 나으셨다. 이는 얼음 속에서 잉어를, 겨울철에 죽순을 얻은 옛 일과 어찌 다르리요? 그래서 세상에서 일컫기를 그 남편에 그 아내라 하였다.

1742년 6월 6일에 별세하시어 공의 묘 청룡 유좌(酉坐)에 장사되셨다. 그 때 본군 군수 서인수(徐仁修)가 부물(賻物)을 보내어 제사를 돕고 3개 면 장정(壯丁)을 동원하여 양례(襄禮)를 넉넉하게 하도록 하였다. 도내의 많은 선비들이 여러 번 읍과 도에 품신하여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복호(復戶)를 내리고 정문을 세우게 명하고 숙부인 교지를 내리셨다. 이러한 사적이 여지승람(與地勝覽)에 소상하게 실려 있다. 진사 경주 이회근(李晦根)은 정려기(旌閭記)를 짓고, 전 승지 옥산 장석신(張錫藎)은 중수기(重修記)를 짓고, 회당 옥산 장석영(張錫英)은 상량문(上樑文)을 지었다. 석물이 세워졌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