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婦 진양 하씨

     

효부 하씨는 선비 김 대삼의 부인으로서,일찌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손수 염습과 장례를 치르고,그 영령앞에서 「남의 아내된 자 남편이 죽으면따라 죽음이 도리이오나 위로 늙으신 시아버님이 계시고 아래로 어린자식이 있으니 이를 섬기고 죽는 이상으로 남편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그 길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젊고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서, 남의 집 품팔이,길쌈해 주기등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며 어른 받들기와 자식 기르기에 정성을 다 받쳤다.

시아버지가 병들매 그 똥을 맛보아 치료의 효과를 측정했고,추운 겨울날 생선회를 원하니,얼음을 깨어 잉어를 잡아다 봉양했다.시아버지가 96세의 높은 나이로 별세하니 혼자서 장례를 다 치르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반드시 성묘를 하였으며 계절이 바뀔때마다 새옷을 지어시 아버지 무덤앞에 갖다 놓고 절을 한 후 그 자리에서 불에 살아 묻으니,그 지극한 정성이 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 효성이 관청에 알려져 고을 원(창녕군수)으로 부터 후한 상이 내려졌으며 국가의 포상을 받도록 하려 많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 일했으나,나라가 어려운 때라(이조말엽)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이효성을 길이 전하고자 고을 선비들과 후손들이 힘을 모아 비각을 짓고 사적비를 세워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비의 크기는 높이 1미터50센치 폭 45센치,두께18센치정도 당초 창녕군 대합면 대곡에 세워졌으나 후에 효부의 친정인 창녕군 이방면 내동으로 옮겼다가 1956년 여름에 다시 본래 자리인 대합면 대곡 동네 근처로 옮겨 졌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