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子 하진구(河九) 근본을 알아서 근본에 보답하는 것은 인륜의 행실이요, 나만 알고 근본을 모르는 자는 이적(夷狄)들의 하는 길이다. 서전에 이르기를 「선후를 알아 행하면 곧 도(道)에 가까워진다」하였으니 이로 볼진대 이적(夷狄)의 마음으로 이적의 행동을 하는 자는 선후(先後)의 일을 가리지 못하는 자이요, 의관(衣冠)의 마음으로 의관의 일을 행하는 자는 인륜의 도(道)를 알아 소중히 하고 능히 선후와 본말을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아, 가정에서 효도하지 않으면서 국가에 충성하는 자 누구이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능히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자 또 누구이겠는가? 그 가정을 가르치지 못하고 능히 남을 가르치는 자 드무니라. 비록 가르치고자 하여도 망령됨이 없겠는가? 그 두터이 할 바를 엷게 하면서 그 엷게 할 바를 두터이 하는 자는 없는 법이다. 효(孝)를 백 가지 행동의 근원이라 함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효도로써라야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에 진실로 까닭이 있음을 알았다. 진양의 하문(河門)은 고려말에 진천, 진산 양세(兩世) 부원군이 공을 세우셨고, 조선조에 문효공 휘 연(演)이 다섯 임금을 차례로 섬기어 영의정(領議政)이 되신 이래로 벼슬이 끊이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빛나는 문벌이 되어 충과 효를 대대로 이어 문학을 숭상하는 가풍을 일으켰다. 시조로부터 26세가 되는 휘 진구(鎭九)의 자는 영익(永益)이요, 호는 금은(衿隱)이다. 1884년에 출생하여 나이 겨우 아홉 살이어쓸 때 부친을 여의었는데, 그 슬픔의 고통과 상(喪)에 거(居)하는 절차가 성인과 같았다. 그 후에 모친의 병환이 위독할 때를 당하여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려 수일간 명을 연장하게 하였고, 상중에 아침저녁 성묘를 보진 비바람에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슬퍼서 곡읍(哭泣)함을 생시의 극진한 봉양과 같이 하니, 고을 풍속이 순화되어 요로에서 표창하고자 하였으나 받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내 어찌 감히 이에 해당하리요? 어찌 이런 일을 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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