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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陽河氏 司直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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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하씨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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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류재 : 경남 진주시 옥봉남동 580번지
 

경류재(慶流齋)

진주시 옥봉남동 580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현 경류재 자리는 문정공 교은 정이오(晉陽人郊隱 鄭以吾) 선생이 쓴 개경원 기문에 사직공 10세 후손이신 고헌공 선조님의 장남이신 봉산군(有宗)선조님께서 경산부사 벼슬을 퇴임 하시고 진주 집으로 돌아오셔서 옛집 옆에 1384년에 개경원(開慶院)이라는 집을 건립하고 오고가는 여행자와 관원들의 숙박의 편리를 봐주었으며 이집은 진주목사 박자안(晉州牧使 朴子安)이 건립했다고 공을 돌리시니 효우군자(孝友君子)라고 평판이 자자 했다 는 기록을 볼때 경류재의 자리는 600여년의 세월을 고히 간직하고 있으며 선조님의 숨결이 숨쉬고 있는 유서깊은 옛터이다. 

그 이후에 개경원에서 장자원으로 이어지고 수리를 거듭하여 오늘날에는 경류재(慶流齋)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뒤쪽에는1960년 3월 21일에 경덕사가 건립되었다 경류재 현판은 대원군 이하응의 사액친필이다
 

경덕사(景德祠)

진주 경류재 내 경덕사는 진양하씨 사직공파의 시조이신 사직공 諱  진 선조님을 주벽으로 원정공 諱 집, 고헌공 諱 윤원,봉산군 諱 유종, 목옹공, 諱 자종, 군사공 諱 계종 등 6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이곳에 모셔진 여섯분 중 원정공, 고헌공, 목옹공 세분은 임진왜란 이전 진주의 북쪽 집현산 응석사 경내에 그 영당이 세워져 초상이 모셔지고 많은 위토 전답이 붙어져 대대로 봉안되어 왔으나 불행히도 임진왜란때에 영당이 소실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365년이 지난 1957년 10월 묘제시에 전국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경류재의 경내에 사당을 짓기로 결의를하고 1958년 11월 2일에 착공하여 그 다음해인 1959년 2월 26일에 상량식을 거행하였고 1960년 3월 21일에 경덕사(景德祠)가 준공되었다.

그뒤 세월이 흘러 경덕사 사당이 너무 오래되어 천장에 빗물이 새어 나와 대종문회 회의를 거쳐 제12대 하대주회장님께서 주간 하여 기와와 썩은 석가래를 교체 하고 회장님의 사비를 내어 경덕사 옆에 묘정비를 세워 2006년 7월 13일 완공하였으며  그동안 위패를 모시지 못했던 嘉靖大夫 京山府使公(봉산군)有宗.선조님의 위패를 경덕사 사당에 봉안하고 묘정비 제막식과 고유재를 함께 올렸다.

 

시조 사직공 하진(河珍)선조님 봉안문(奉安文)

     "엎드려 생각 하옵건데 부군께서는 우리 하씨의 시조로서 고려때에 나시니  국운이 높을 때 였네,

      학문의 바탕은 성리학(性理學) 이요 행적의 근원은 충효이었네

      벼슬에 올라 임금을 받들어 명교(名敎)를 세우시니  이름이 사방에 더날이어 일세에 일컬어졌네.

      교화는 백성에게 젖었고 덕은 후손에 드리워져 높고 큰 자취는 천세에 제사드려야 하는데

      창황하여 영위를 모시지 못하였으매 송구스런죄 하늘에 다았기로  이제 길일 을 가려

      경덕사에 받드러 모시였네, 조손(祖孫)이 한집에 계심은 비단과 꽃이 함께 빛남이로 소이다.

      감히 사유를 고하여 잔을 올리오니 엎드려 비옵건데 이정성을  받으시옵소서."

 

      시조공 상향문(始祖公常享文)

 

      곧은 말씀 조정에 떨치고 덕망은 한 시대에 무거웠도다.

      예의는 의(義)에서 일어났으니 정성 다해 제사 드림 마땅하옵네

       

      진천부원군 원정공 송헌선생 상향문(晉川府院君 元正公 松軒先生 常享文)

      풍습을 바로잡은 높은 덕망이요 나라에 보은한 단충이로다

      왕께서 공적을 가상히 여겨 시호를 내리셨네.

       

      진산부원군 고헌선생 상향문(晉山府院君 苦軒先生 常享文)

      정승 집안 어진 아드님 왕실의 충신이시었읍네

      기강(紀綱)을 바로 세우시니 조신이 두려워하였소이다.

       

      봉산군(有宗) 鳳山君 奉安文

      부군께선 송헌(松軒).고헌(苦軒)적전(嫡傳)으로

      가정교훈 익히시어 문장덕행 겸하셨네

      충성으로 나라 도아 명망이 빛나셨다.

      개경원(開慶院) 옛 基地가 지금까지 전해오네

      효우(孝友)의 끼친모범 수 천년 향사하리

      자손이 멀이 살아 신주 봉안 지연했네

      좋은날 선택하여 사당에 봉안하니 父와 祖가一室이요

      兄과 弟가 동상(同床)이라 연유를 고 하면서  

      이 잔을 드리오니 바라건대

      존영(尊靈)께선 흠상 하심 주옵소서


       
      鳳山君府君常享文(봉 산 군 부 군 상 향 문)

      송헌 고헌 적전이요 효우하신 군자로다.

      끼친음덕 남아있어 제사 드림 마땅 하네.

       

      좌의정 목옹선생 상향문(左義政木翁先生 常享文)

      재상 풍도와 절개를 지니시어 충성을 바탕 삼아 곧을 길 걸으셨네,

      두 마음 품음 없어 맹세하고 성안에 들지 않으시었네.

       

      군사부군 상향문(郡事府君 常享文)

      송헌, 고헌은 집안 음덕이요, 포은, 목은은 도의의 벗이었네.

      나아가 충성하시고 물러나 절개 지키시니 가히 후손의 법도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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