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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陽河氏 司直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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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재선생연보
 
 

 

文孝公 敬齋 하연(河演)선생의 시(詩)

 

자경잠을 짓다

경재선생은 어릴때 부터 학문을 할 때 공경(敬)에 종사하여 경재(敬齋)라 호를 하고 벽에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을 써 붙이어 항상 눈에 보이도록 하였다 일용 행사에 공인으로 스스로 기약하여 재산도 모으지 않고 성색(聲色)에도 동요 않아 집안이 화목하였다 언제나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단정히 하여 사당에 절하였다 영의정(領義政)이 되고 늙어서도 폐하지 않았으며 사무가 복잡하거나 큰 추위 큰 더위라도 변함이 없었다 앉으면 반드시 대궐을 향하고 손에는 책을 놓지 않아 좌우에는 도서(圖書)를 쌓아두고 반듯한 생활을 하였다 근검 절약 정신이 천성에서 우러났으며 더욱 이욕(利慾)의 마음이 사람을 해하는 것을 경계하여  잠(箴)을 지어 스스로 를 깨우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自警箴 景泰二年辛未二月日作

 

貴則近禍。富則不仁

何如雲壑。怡養精神

一片顏巷。樂在其中

三逕陶園。皓月淸風

聖賢尙然。況乎小儒

屋八九間。可容殘軀

田數十畝。足慰飢渴

我安我分。不趨利慾

 

번역

" 귀(貴)하게 되면 화(禍)가 가까워 지고

부유(富)하게 되면 어질지 못 하게 되나니

어찌 운학(雲壑)에서 정신을 수양하는 것만 같으리오?

가난한 안자(顔子)의 마을 에도 즐거움은 그 속에 있었으며

세 갈랫길 도연명(陶淵明)의 동산에도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있었다네

성현(聖賢)들도 그렇게 하였거늘 하물며 보잘 것 없는 선비들이야

여덟 아홉 칸 정도의 집이면 이 쇠잔한 몸을 누윌수 있고

논밭 수십 이랑이면 배고픔과 목마른 것 달랠 수 있네

나는 내분수를 편안히 여겨 이욕(利慾)을 쫓지 않으려 한다네 ".

 

일편안항(一片顔巷) 안자(顔子)가 누항(陋巷)에 살면서  주먹 밥 과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도 그 낙(樂)을 고치지 않았음으로 공자(孔子)가 칭찬하였다 고 한다 연세가 많고 지위가 높아도 청렴 결백으로 스스로 격려하여 몸을 다스리는 데 게을리 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경재잠도

경재선생이 평생토록 (敬)공부에 열중 하시면서 일찍 주자(朱子)의 잠(箴)으로 그림을 만들어 벽에 걸어두고 보시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으셨다

 

" 의관을 바르게 하여 바라보는데 존엄하게

마음 가지기를 고요히 하여 상제를 대하는 듯 한다

발의 자세는 필히 무겁게 손의 자세는 필히 공손 하게

땅은 가려서 밟되 개미집도 둘러서 간다

문을 나서면 손님 맞이한 듯 일을 접하면 제사를 받드는 듯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감히 혹시나 경솔히 하지 말 것

입을 다물기를 병과 같이 하고 뜻은 방비하기를 성과 같이 하라

조심조심 하여서 감히 혹시라도 경망하지 말아라

동으로 갈 것을 서로 가지 말며 남으로 갈 것을 북으로 가지 말라

일을 당하여서는 잘 살피고 그 가야할 길을 달리 하지 말아라

이(貳)를 이(二)라 하지 말고 삼(參)을 삼(三)이라 하지 말라

마음은 오직 하나로 하여 많은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이와 같이 일삼으면 이것을 일러 경을 지킴이니

동과 정에 어김이 없으면 내(內)와 외(外)가 아울러 바르게 된다

잠깐이라도 틈새를 두면 만 갈래의 사욕이 스며든다

불이 아니라도 뜨거워지고 얼음이 아니라도 차가워 진다

털끝 만한 차이에도 천지가 뒤바뀌어 삼강이 무너지고 구법이 무너진다

아 ! 젊은 자들이여 생각하고 공경 할 지어다

먹글씨로 써서 경계를 삼아 감히 심령(心靈)에 고한다 ."

 

응석사(凝石寺)영당(影堂)

 

응석사(凝石寺)는 진주에 있는데 경내에는 경재 선생의 증조부 원정공 집 (元正公 楫) ,조부 고헌공 윤원(苦軒公允源) 목옹공(木翁公)의 영정(影幀)을 모신 영당(影堂) 보장고(寶藏庫)가 있었다고 한다 경태(景泰) 신미(1451년)에 선생이 영의정 벼슬을 역임 하실때 형제들과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와 영당(影堂)을 중수하고 부친 목옹공(木翁公)의 초상(肖像)을 함께 모시고 전답을 비취하여 향화(香火)를 받들게 하고 보장고(寶藏庫)라 이름 하였다 그리고 시를 지어 현판을 붙이니 사대부들이 그 사실을 노래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임진왜란때 에 영당이 그만 소실 되었고. 세월이 흘러 보장고(寶藏庫)에 비취한 전답들도 지방의 권세층에 수탈 당한 바 있었으나, 문효공 할아버지의 막내 아드님 연당공 휘 우명(友明)의 4세손인 합천에 모헌공(暮軒公)하혼(河渾)께서 경상도 감사 윤방 등 여러 곳에 호소하여 위토를 전부 우리 문중으로 되찾아오게 되었는데, 이 때가 1610년경이다.

이때에 환수된 위토가 전부 66두락으로 원정공(元正公) 고헌공(苦軒公) 그리고 진한국부인 철성이씨(辰韓國夫人 鐵城李氏)의 묘소 위토로 정하셨는데, 30두락은 모헌공(暮軒公)이 처분하여 합천소종중(陜川小宗中)의 위토로 삼은바 있으며 해방 후 1959년에 뒷날 응석영당에 모셔졌던 원정공(元正公) 고헌공(苦軒公) 목옹공(木翁公) 세 분 선조와 시조 진 부군(珍府君)과 목옹공의 아우이신 군사공(郡事公) 휘 계종(啓宗)선조님을 포함하여 현재 경류재 경내의 경덕사(景德祠)에 다섯 분의 신위를 모시고, 음력 이월 말정(末丁)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가 2006년 7월 13일날 후손들이  그동안 위패를 모시지 못했던 嘉靖대부 京山府使公(봉산군)有宗.할아버님의 위패를 경덕사 사당에 봉안하고 고유재를 올렸다..

한편 지금의 응석사 경내에 응석영당의 옛 터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하씨선조(河氏先祖)의 영당터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역사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다.

 

응석사 영당 판상운시(凝石寺影堂板上韻)詩

1451년 3월에 휴가를 받아 진주에 돌아와 응석영당을 중수하여 아버지 목옹공 초상을 함께 모시고 보장고를 세웠다. 영당이 집현산 응석사에 있으니 즉 선생의 증조 할아버지 송헌공 및 할아버지 고헌공의 초상을 모신 곳이다.
이 해에 선생의 동생 대간공 결이 벼슬이 임기가 끝나 서추(西樞) 군직인데 다른 벼슬을 할 동안에 잠깐 함께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와 영당을 중수하고, 목옹공 초상을 함께 모시고 재물을 내어 제사 받들 전답을 마련하여 그 이름을 보장고라 하였다.
영당 현판에 시를 지어 벽에 붙이니 대간공 潔 (결)이 그 시에 화답하고 완역재 강석덕, 승지 강맹경, 돈령부사 이명신, 좌의정 황보인, 찬성 김종서, 참찬 안숭선, 이조판서 정인지 도승지 이계전 우찬성 정분 등이 차운했다.


두수

원문

凝石招提勝地開

蔚藍淸淨絶塵埃

靈湫遠入滄溟會

秀氣元從智異來

德器雍容孚道骨

風儀儼正靜心灰

寶藏永慕終穹壤

擬是金剛不毀臺

번역

" 응석의 이 초제(招提)가 승지(勝地)에 열렸으니

울람(蔚藍)토록 청정하여 진애(塵埃)가 끊어졌네.

영추(靈湫:영기가 어린 못)가 멀리와서 창명(滄溟: 큰 바다)에 모이었고

힘찬 기상은 본래부터 지리산서 몰려왔네.

덕기(德器:덕스러운 기우)에 옹용(雍容:온화한 모습)이니

진실로 도골(道骨)이요. 풍의(風儀)가 엄정(儼正)하니 심회(心灰)도 고요하네.

보장(寶藏:보배로 감추어 둔 것)을 사모하여 궁양(穹壤:천지의 뜻)

에서 마쳤으니 금강(金剛)과 비슷한대(臺) 헐리지 않으랴".

원문

玉潤星華粲爛開

淸標不點一毫埃

敬宗尊祖源源遠

與子傳孫脈脈來

意匠深探新造化

英靈更撥舊塵灰

嶺南故國仙遊迥

凝石風樓與月臺

번역

" 옥윤(玉潤)들이 성하(星河:별)처럼 찬란하게 열렸으니

맑은 표적(영정을 뜻함)에는 한 점 티끌이 끼이지 않았구나.

종문(宗門)을 공경하고 조선(祖先)을 높히는

정성, 원원(源源:물이 흘러서 끊이지 않음)하게 멀었는데,

아들·손자에게 전해져서 맥맥(脈脈)히 이어왔네.

의장(意匠)으로 깊게 찾은 새로운 조화(造化)이니

영령(英靈)께서 물리치어 옛 진회(塵灰)를 떨쳤도다.

영남(嶺南)은 고국(古國)이니 신선들이 놀다갔나?

응석사 다락에는 월대(月臺)를 함께 했네."

領議政 河演(영의정 하연)

 

동생僉知中樞院事 결(潔)이 차운하기를

원문

領相尊兄藻鑑開

重新祖影脫凡埃

承家善繼光前代

報本追崇示後來

粲粲丹靑堪侍座

昭昭耳目不爲灰

悠悠敬慕終天地

淸範高風月滿臺

 

번역

 "영상 형님이 높은 견식 펴시니 새로워진

선조 영정 세속 티글 벗으셨네.

가업을 이어 선대를 빛내셨고

조상에 보답할 길 후손에 보이셨네.

찬란히 단청한곳 모실자리 될 만하니

밝으신 얼굴 모습 영원히 보존되리.

유유한 경모의 마음 다함이 없으려니와

맑은 법도 높은 모습 달빛 처럼 비추네."

 

사촌동생 척(滌)이 차운하기를

원문

數幅生綃眞面開

敬安影閣淨無埃

進賢冠怳天邊亞

搢笏紳依日下來

雨露感期春茁物

苾芬薦擬劫飛灰

較他麟閣群英畫

何若繪吾三世臺

 

번역

" 몇 폭 생사 비단에 참모습 열리시니,

공경스런 유상이 티없이 맑으시네.

석학이며 고관이 수없이 모이는데,

빛나는 홀신(笏紳)이 눈부시게 어리네.

사모하는 마음은 봄 기운이 솟아난 듯,

드리는 제물의 향기가 나는 듯하네.

다른 집 초상화가 많다 하지만,

우리 삼세 영정과 어찌 비교되리요?."

 

완역재 강석덕(姜碩德)송헌공의 외증손

원문

寺古山深金碧開

幾回人世漲黃埃

馬奔雷吼朝宗去

虎踞龍盤作鎭來

久邦儀形如白璧

肯將神氣若寒灰

要令勝迹留天地

惟有招提似玉臺

번역

"깊은 골 오랜 절에 찬란한 빛 퍼졌는데,

몇 번이나 세상 병란 창궐 했던고?

뛰고 우는 시냇물 바다로 흘러가고,

서리고 웅크린 산 진무(鎭撫)하듯 앉아 있네.

오래도록 앉은 모습 깨끗한 구슬과 같고,

거느리는 신기(神氣)는 불을 끄듯 서늘하네.

훌륭한 임의 자취 천지에 남기려고

응석사(凝石寺)가 있어서 옥대(玉臺)같이 빛나네."

 

돈령부사 이명신(李明晨)송헌공의 외증손

원문

松柏陰中梵刹開

煙霞月露浸芳埃

山川秀氣眞堪托

人物英靈有自來

裨補吾鄕稱寶地

奉安今日致丹灰

世傳追遠無窮意

千載昭昭般若臺

번역

" 소나무, 잣나무 속 응석사가 열리니,

아름다운 풍월에 먼지 조차 잠기었네.

산천의 수려한 기상 진실로 의탁할 만하니,

인물의 꽃다운 넋 다다라 옴 직하네.

우리 고을 빛내는 보배로운 이 땅에

받들어 모시는 오늘 깊은 정성 바치었네.

세세로 추모할 무궁한 뜻이

천년토록 반야대(般若臺)에 밝게 빛나리."

 

동부승지 강맹경(姜孟卿)송헌공의 외현손

원문

薝蔔林中寶刹開

眞堂又是淨無埃

容儀不爽如平昔

誠厚相傳在耳來

人自浮休漚返水

物終衰變火爲灰

永懷春露秋霜感

莫使他年且廢臺

번역

치자꽃 수풀 속에 응석사가 열리니,

영당도 조촐하여 티끌 없어라.

얼굴 모습 영락없이 생존시와 같고,

충효는 전해져서 오늘에 이르렀네.

인생이 무상하여 거품이자 물이요

만물이 쇠변하여 불 되고 재 될지라도

사모하는 정성 영원히 간직 하여

다음날 이 집이 폐허 되게 하지 마오."

 

우찬성 절재 김종서(金宗瑞)

원문

靑山蘭若側金開

境靜曾無一點埃

百行源深圖乃祖

三生業盡改如來

終然有物同泡影

始也何人見劫灰

惟有光風與明月

千秋萬古照靈臺

번역

청산 속 절터에 접시꽃이 피었는데,

경내가 고요하여 먼지 조각 하나 없네.

효성 깊어 할아버님 초상화를 그렸으니,

삼생 업이 다하여 부처가 되시었네.

마침내는 온갖 것 거품같이 될망정,

처음에야 끝장을 생각할뉘 있으리.

청명한 날 바람과 비 갠 뒤의 달빛이

천추만대에 영대를 비추리라."

 

우찬성 죽계 안숭선(安崇善)

원문

上房靑璧倚大開

花雨霏霏不動埃

雲外磬聲和月落

雪中松色透囱來

儼然遺像猶存白

定後師心若死灰

箇裏寶藏惟永慕

孝孫端合領鑾臺

번역

" 위로는 청벽이 하늘을 의지했고,

휘날리는 꽃비 속 먼지도 일지 않네.

구름 밖 풍경 소리 달빛 속에 떨어지고,

눈 속의 솔잎 빛은 창에 스며 비치네.

엄연한 의상은 상기도 깨끗하고,

가라앉힌 마음 신조(信條)세속 마음 전혀 없네.

소중히 여기 모셔 길이 사모하려 하여

효손이 합심하여 난대(鸞臺)를 이루었네."

 

도승지 한산 이계전(李季甸)

원문

白雲堆裏梵宮開

罨畫溪山不染埃

數幅丹靑延日月

一門淸白付雲來

焚香孝思深如海

面壁禪心冷欲灰

看取晉川流慶遠

才賢衮衮貯金臺

번역

" 흰 구름 쌓인 속에 절이 있으니,

씻은 듯한 시내와 산 먼지 하나 안 묻었네.

몇 폭의 단청은 세월을 이어왔고,

한 집안 청백함은 자손들에 붙이셨네.

분향하는 효심은 바다같이 깊은데

참선하는 고요한 마음 욕심을 식혀 주네.

진천에 흐르는 경사 오래임을 알아차려

재현들이 줄을 이어 금대 쌓아 세웠네."

 

향후생 우찬성 정분(鄭분)

원문

地僻天深洞府開

梵宮高絶迥飛埃

敬安先祖英靈在

澤厚雲孫上相來

樂及鄕閭終不歉

家傳紈袴永無灰

晉人刮目須當看

元正眞容邁五臺

번역

" 깊고 높은 골짜기에 선경(仙境)이 열렸는데,

높고 높은 절이 있어 티끌 멀리 끊어졌네.

공경히 모신 선조 꽃다운 영계옵신 바,

두터운 덕 대대로 자손들에 입히셨네,

즐거움은 아쉬움 없게 고을에 미쳤으니,

귀족 으로 이어진 자손 길이 다함 없으리.

진주 사람 눈 비비어 우러러 볼지어다,

원정공의 참모습이 오대산보다 높았구나."

 

좌의정 영천 황보인(皇甫仁)

원문

永慕慇懃素練開

更模遺影掃留埃

百年面貌忽如舊

一夕英靈應復來

孝則後昆昭揭日

感通冥氣動飛灰

珍藏佛寺何煩問

長使心通明鏡臺

번역

"사모함 은근한 속에 비단폭이 열리니,

새로워진 유상에 남은 티끌 쓸어졌네.

백년 후 뵙는 모습 문득 예와 같으시니,

밤 사이에 혼령 응당히 또 오셨네.

효도하는 후손들 영정을 모시는 날에

신령도 감통하사 기척이 계신 듯하네.

이 불사(佛寺)에 보장함 구태여 묻지 마오,

영원히 명경대처럼 마음 속에 비치리니."

 

판서 하동 정인지(鄭麟趾)

원문

洞壑淸幽淨域開

靑蓮宮宇隔風埃

應觀結習從無試

始悟今生是適來

莫詑西方如上璧

須知寸懇不成灰

高門孝行人皆仰

雲表岧嶢萬丈臺

번역

"산골이 맑고 깊숙한 곳에 절을 열었으니

청련궁우(靑蓮宮宇)에 바람 먼지가 멀었더라

맺어진 인연이 숙명임을 보았으리

이 생(이生)이 우연히 온 것을 비로서 각오하네

불도가 벽에 올라간다 자랑하지 말고

마음의 정성이 재같이 사라지지 않음을 알지어다

높은 가문에 효도한 행실을 사람마다 우러러 보니

구름밖에 만 길이나 대각이 높았구나."

 

용견시(龍見詩)

1422년(세종4년)전라도 도관찰출척사 병마도절제사(全羅道都觀察黜陟使兵馬都節 制使)시절 9월에 남원에 도착하여 산동 을 유람하고 바위에 詩를지어 돌에 새겼다

원문

題山洞石

山洞之石落落

山洞之水淵淵

黃花白酒堪樂

正値九月風烟

"산동의 바윗돌은 크고 높으며

산동의 푸른 물은 깊고 깊도다.

황국화로 빚은 술 즐거운 이때

구월이라 가을풍경 장히 좋구나.

 

경회루(慶會樓)에서

문종2년 봄비가 개인 어느 날 과거를 관리하는 시험관들이 공원(과거 시험장)에 모여서 임금께서 하사하신 어사주를 마시면서 주고받은 시문입니다.

貢院唱和詩 原韻?小序 河演(晋陽人 諡文孝 配享文宗廟廷) 余與諸公承命考試尋有上尊之賜相與拜飮時方宿雨初晴物儀方新花柳芳菲池水澄活可愛聊成一律呈座上諸公

" 내가 여러분들과 함께 어명을 받들어 과거를 관리 하고 있을 때 주상께서 술을 내려 주셨다. 우리는 서로 절하고 함께 마셨는데 마침 어제 밤에 내린 비가 처음으로 개어서 모든 것이 새로우며 꽃과 버드나무는 아리땁고 연못의 물은 맑아 더욱 아름다웠다. 여기에 한 율의 시를 지어 자리에 모인 여러분께 보이노라".

시원문

春暮政佳節

雨奇還好晴

柳絲承露重

花蘂倚風倚

魚上圓荷躍

蛙穿細藻鳴

興繁杯屢酌

醉倒句堪成

번역

" 늦은 봄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에

비가 개여 더욱 그 빛을 더하네

실버들은 이슬을 머금어 더욱 늘어지고

꽃술은 바람결에 비스듬히 나부낀다

물고기는 둥근 연잎 위로 뛰어 오르고

개구리는 물풀 사이에서 소리 내어 우는데

흥에 젖어 술잔이 여러 번 오고갈 때

술 취해 쓸어져 시 구절도 떠오르지 않는구나 "

 

성삼문(成三問)이 차운 하기를

" 흥겨운 술 석잔에 흥이 겨운데

가는 바람에 묵은 비 갠 다네

푸른 빛 드리운 못가 버들 가늘고

붉은 빛 젖어드니 언덕의 꽃 기운다

여러 재상들은 공명이 크고 크며

모든 선비는 문학을 울리 누나

문 앞 도리(桃李)를 심었으니

그 밑에 길이 나는 것을 다시 축하 하노라."

 

진주 矗石褸(촉석루)


진주 촉석루에 걸려있는 경재선생의 시 원문

원문

矗石褸

高城絶壑大江頭

冬柏梅花矗石樓

若也登臨留勝蹟

請題佳句記吾州

번역

" 높은 성 떨어진 벼랑 큰 강 머리 인데

동백꽃 매화꽃이 촉석루에 피었구나.

올라가 좋은 자취를 남기려고 하거던

청하노니 좋은 시를 지어 우리 고을 記念 하소."

 

다르게 번역

높이 깎은 벼랑 큰 강 머리 임한 곳에

동백 매화 우거진 촉석루 서 있구나

만약에 여기 올라 좋은 자취 남기려면

아름다운 글을 지어 우리 고을 적어 두게.

촉석루 시 역문: 慶南文化硏究 제 20호(경상대학교 慶南文化硏究所 1998년 發行)에서 轉載

 

晉州題詠(진주제영)

文武英材生樂土。山川淑氣藹名城

百里桑麻深雨露。一區山水老雲煙

번역

" 문무 영특한 인재는 좋은 땅에서 태어 나고

산천 맑은 기운은 이름난 성에 어리었다

백 리의 상마는 우로에 자라나고

한 갈피 산수는 구름 연기 늙었구나.

 

밀양 영남루(嶺南樓)



밀양 영남루에 걸려있는 문효공 선조님의 시

 

영남루 원문

嶺南樓在洛東天

勝地曾聞受命前

月到風來捲簾外

鳶飛魚躍憑欄邊

一川曲折千畦畫

兩峽分開萬樹煙

却恨未陳江夏枕

豈宜涼處獨鋪筵

번역

" 영남루(嶺南樓)는 낙동강의 동쪽에 있어

그 좋은 경치는 명을받기 전에 일찍 들었네,

달이 솟아올라 바람불어 말아올린 주렴밖에

솔개날고 고기뛰니 난간에 기댄 끝 이로다

한 냇물 굽이치니 천 이랑이 그림같고

두 골짜기 열렸으니 만(萬)나무에 연기로다,

문득 생각 하노니 강하침(江夏枕)도 못했는데

내 어찌 서늘한 이곳에 홀로 자리 펴리오 "

 

을사(乙巳)-세종7-1425년 영남루(嶺南樓)에서 경재 河演 씀

강하침(江夏枕)은 한(漢)나라 황향(黃香)은 강하(江夏)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여름이면 부모 침석에 부채질을 하였다 고 한다 강화 황동(江夏黃童)이란 효자를 비교한 말이다.

지금도 밀양 영남루 위 높은곳에 잘보이지는 않지만 강쪽 천정으로 잘찾아 보시면 문효공 할아버님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저도 한번 답사 하고 왔습니다 밀양 가시면 영남루에 올라 가셨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해동명적 (海東名蹟)

 

1970년 12월 30일 보물 제526호로 지정되었다. 2권 2책. 25×37.2cm.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玉山里) 이해철(李海徹)이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인 신공제(申公濟, 1469~1536)가 우리나라 역대 명현(名賢)들이 지은 저술 중 석각(石刻)된 자료를 탁본(拓本)한 것이다. 그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희인(希仁), 호(號)는 이계(伊溪)로서, 1495년(연산군 1)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 11인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문한관(文翰官)으로 입사(入仕)하여 내외의 청요직을 역임하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에 명필(名筆)로 이름이 높았으며, 글씨의 감식에도 조예가 깊었다.
 여기에 수록된 탁본들은 조금도 훼손된 데가 없이 완전(完全)한 것으로 보아 초탁(初拓)으로 여겨진다. 상(上)·하권(下卷) 2책(二冊)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上卷)은 20매(枚), 하권(下卷)은 23매(枚)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5cm, 세로 37.2cm이며, 재질은 저지(楮紙)에 탁본 자료를 배접(背接)하였다.
 상권(上卷)에 수록된 자료들의 저작 인물은 먼저 조선왕조의 문종(文宗), 성종(成宗)의 2명, 다음에 신라(新羅)의 최치원(崔致遠), 김생(金生), 영업(靈業)의 3명, 고려(高麗)의 탄연(坦然), 이암(李嵓), 신덕린(申德隣)의 3명 등 전체 8명이다. 하권(下卷)에는 이강(李岡), 승(僧) 혜근(慧勤), 성석린(成石磷), 박초(朴礎), 권근(權近), 이첨(李詹), 정도전(鄭道傳)
하연(河演) , 정총(鄭摠), 민자부(閔子復), 신색(申檣), 무명씨(無名氏) 등 12명의 작품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활약했던 인물들의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탁본들은 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왕조 초기의 대표적인 명필(名筆)들의 작품으로서, 이들 작자(作者)들의 필적은 현재 금석문(金石文)을 통하지 않고는 진적(眞蹟)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록 진적의 모각(模刻)을 탁본하여 정리한 책이지만 선현(先賢)들의 진적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고, 자료 당시의 서체(書體)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이 없어서 그 편찬 연대가 분명치 않으나,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근세신판서공제 취동국명인필적간행 자최치원이하범약간인 명왈해동명적……박경지사거명적지취재십허년(近世申判書公濟 聚東國名人筆跡刊行 自崔致遠以下凡若干人 名曰海東名跡……朴耕之死距名跡之聚纔十許年)”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박경(朴耕, ?~1507)이 죽은 10여 년 후인 1517년(중종 12)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보물 제526호 해동명적 (海東名蹟)에 실린 문효공 친필 시문 2수

景泰元年六月十六日 판중추부사 안순 부자가 벼슬을 제수받고 이루어진 시축에 차운하다.

連珠圭璧照淵源

奕葉芝蘭委世門

自是傳承能樹德

栽培妙理豈偏恩

 

"연주(連珠)와 규벽(圭壁)이 연원에 비치니

지초와 난초 빛나는 잎새가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에 맡겨졌네

이로부터 전해 받아 능히 덕을 심은 것이니

북돋우어 가꾸는 이치가 어찌 은혜일 뿐일까."

진양(晋陽) 하연(河演)

 

집현전 부제학 신석조(辛碩祖)에게 서대(犀帶)를 전하면서 시(詩)를 지어 주었다

贈集賢殿副提學辛碩祖爲傳犀帶 筆苑雜記。自國初有三公相傳之犀帶一腰。傳必門生。黃翼成喜,許文敬稠相傳至先生。至是傳辛文僖。其後帶不復傳

衣鉢相傳舊有文

梅堂知我我知君

古今授受情何異

身世存亡事各分

此日龍墀同雨露

他時鵬路際風雲

儒林慶業眞難致

一百英才獨出群

"의발(衣鉢)이 서로 전하는 것이 예로부터 문적(文蹟)에 있으니

매당이 나를 알고 내가 그대를 아는 도다

예나 지금이나 주고받는 정이 어찌 다르겠는가

신세(身世)가 있고 없음에 따라 일이 나누어지나니

오늘 날 조정(朝廷)에서 우로의 은혜 함께 입사와

다른 날 대붕(大鵬)의 행로에 풍운제회(風雲際會)하리니

유림의 경사로운 사업은 참으로 이룩하기 어려운데

일 백의 영재 중에 홀로 출중하여라."

 

경태 원년(세종 32년 1450년)영의정 부사 진산 하연(河演)

 

예천을 하례하는 시를 두수 지어 시종하는 모든 친구에게 부치다

 

세종25(1433)년 겨울에 청주의 구라산 아래에서 용출하는 좋은 샘이 있어 세종26(1434)년 봄에 길일을 택하여 왕이 행차를 하였는데 좌찬성 진산 하연 공 이 서울에 머무르게 되어 왕을 수행하지 못하게 됨을 탄식하여 7언시 2절을 지어 보내오니 수행(隨行)하던 여러 사람이 그 시를 차운(次韻)하여 시를 지었다. 그 때 회헌공 류의손은 우승지로 호종을 하였다.

原韻詩(원운시)

諸福嘉祥應自天

史中傳語固懸懸

朝鮮上古西原地

今日分明見醴泉

煙花三月艶陽天

惟見空城酒旆懸

扈從龍光堪企荑

更聞諸子飮靈泉

 

번역

" 경사스러운 여러 복(福)이 하늘에서 마땅히 온 조짐은

역사로부터 전해오는 말에서 진실로 증명 되었도다.

예로부터 조선의 서원이라는 땅에

오늘(今日) 분명히 좋은 샘을 발견하였다."

"연화(煙花)에 3월 봄이 되었는데 동남쪽 하늘

빈 성에 주막을 알리는 깃발만 달려있는 것을 보았노라.

임금님을 수행한 그 영광을 부러워 하였는데

들으니 자네들은 그 영험한 샘물을 마시겠구나."

세종26(1434)년 봄 左贊成 晋陽 河演(좌찬성 진양 하연)

 

온양에서 우연히 읊다

 

세종23년(1443년)에 세종대왕이 바람병환으로 여러번 이천의 초정온양에(椒井溫陽)에 거동 하였는데 선생이 여러 신하와 함께 호종(扈從)하였다가 선생은 일이 생겨 먼저 돌아와 시를지어 붙이고 화답하기를 요구하였다 성도 비었고 또 술을 금하는 것이 엄하여 좋은 계절을 헛되이 지나게 되었으므로 한탄한 것이다

원문

溫陽溫水水西頭

四月山村事事幽

拙筆荒聯爲日課

香芹薄酒遣春愁

煙綿細草萋萋長

風轉遊絲褭褭浮

淡蕩此身無少累

洗然江漢一虛舟

번역

" 온양 온천 서쪽에

사월의 산촌은 날마다 그윽하다

졸렬한 붓 황당한 글로 일과를 삼았으며

향긋한 미나리 박한 술로 봄 근심 덜어 본다

연기 낀 작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봄바람 아지랑이에 가볍게도 떠 오른다

담박한 이 몸이 조금도 누(累)가 없어

맑은 강위에 뜬 빈 배와도 같아라."

 

소두(少杜)의 천리행제 시를 차운하여 세종임금께서 온천 목욕을 마치고 환궁하심을 축하하다

次少杜千里鸎啼韻。賀利浴還宮

南轅躑躅映山紅

北駕郊原麥浪風

遙望翠華爭祝壽

謳歌蹈舞九街中

" 남으로 가실 적에 철쭉꽃 산에 붉었더니

북으로 오실 때는 벌판에 보리 물결이라

푸른 일산 바라보며 다투어 축수하여

노래하며 춤을 추어 구가(九街)가 법석 인다

 

충청감사에게 부치다

三月溫陽扈駕時

茶談日日奉淸儀

賴有大興傳信字

行宮萬福已詳知

"삼월달 온양으로 임금님을 호위할 때

차 마시고 이야기 하며 날마다 맑은 모습 받들었네

대흥이 서신을 전해 오기에

임금께서 만복하심 자세하게 알았노라."

 

류의손공이 승지를 제수받을때 축하하면서 쓰신 詩

1442년류의손공이 승정원 우부승지로 승진하니 경제 하연선생은 연회를 베풀어 축하시로"규성조은대"라는 시를지어 축하 했다

賀柳義孫拜承旨

원문

乾坤造化好栽培

聲價原從翰院來

喜溢曉牕揩目見

奎星炳煥照銀臺

번역

" 천지의 조물주는 인재 양성을 좋아해도

세상의 좋은 평판은 원래 예문관에서부터 나왔도다.

기쁜 소식 눈 비비고 보니

새벽 밝은 창에 문운(文運)의 별이 빛나게 승정원에 비쳤네."

 

수릉관 남지(南智)에게 주다

 

세종28년(1446년)에 소헌왕후가 돌아가셨다. 그 때 수릉관을 할 사람이 어려웠다. 남공(南公)이 부모상을 마치고 대궐에 들어가 자청하였다. 그 결과 여론이 크게 일게 되자 선생이 시(詩)를 지어주니 곧 여론이 그쳤다.

 

원문

事君之道事親同

一體無間是謂忠

泣血三年情禮盡

虛心早歲聖恩洪

芬華豈欲微官做

誠悃始看自已充

出處行藏皆適義

莫如今日我知公

번역

" 임금 섬기는 도리 부모 섬김과 같은 것이

일체로 다름 없어야 충성이라 할 수 있다.

피눈물 삼년 동안 정례를 마쳤고

허심(虛心)하여 일찍부터 임금 은혜 넓었어라

영화라면 어찌 작은 벼슬 하고 파 하리요

정성이 그 몸에 가득한 줄 알겠노라

행하고 감추는 것이 의리에 적당하니

그대를 알아주는데 나 같은 이 없으리라."

 

 

김구가 멀리 북계로 귀양갔을 때 그의 친구 경재 하연선생은 다음과 같이 시를 보내 위로했다.

故人何處添華髮

羌笛胡茄月滿樓

옛 친구 어느 곳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고,

"강적 호가소리 달빛은 루(樓)에 가득하네."

 

아래의시는 문종2년겨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공이 전라도로 낙향 하때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경재선생께서 써주신 시문입니다.

시원문

經營制度出心香

存養知行自義方

匪好赤松空却老

還如五柳恥爲郞

龍光遠映三垂豁

鵬翮高登萬里長

鶴詔應飛山水窟

鷗盟豈徙風雲場

有美辭送崔先生 河演

번역

"그대가 경영하는 제도는 마음속에서 향기로운데

존양하고 옳은 행동은 의에서 나오네

적송자(신선) 같이 쓸데없이 늙지 않아

오류촌에 돌아온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용의 빗줄기는 골짜기 멀리까지 비추이고

붕새는 만리 멀리 날아가노라

학은 산수굴에 날아들고

구맹을 어찌 풍운 속으로 옮길까".

아름다운 글로 최선생을 보낸다. 河演

 

금성대군 유(瑜)가 정자를 화산 밑에 짓고 승은(承恩)이라 이름 하여 경재 선생에게 기문과 시를 청하였다

승은정 詩

曾霑睿澤好經營

命扁承恩敬慕情

滿地名花開次第

回亭活水映虛明

不干世道紅塵染

只有靈臺一點淸

豈啻東平爲善樂

養精兼盡華封誠

 

" 일찍이 임금님 은혜 입어 정자 을 잘 지어서

승은(承恩)이라 이름 하여 삼가 사모하는 정을 표하였네

땅에 가득한 아름다운 꽃들은 차례로 피어나고

정자를 감돌아 흐르는 맑은 물 환하게 비치노라

속된 세상의 붉은 티끌에 물들지 않고

다만 영대(靈臺)에 한점 맑음이 있을 뿐

다만 동평(東平)이 어찌 착한 일 하는 것만 즐길뿐이리요

정신을 수양하고 겸하여 요(堯)임금 축복하는 화봉(華封)의

정성을 극진히 다 하였네."

 

판원 조말생이 재혼함을 축하 하다

人生七十古來稀

七十新郞事更輝

少也交情吾最厚

東牀勝宴與誰歸

"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데

칠십 신랑이란 일이 더욱 빛이 난다

젊을 때 사귄 정이 내가 가장 두터운데

동상(東床) 좋은 잔치 뉘와 함께 하려는고."

※ 동상(東床):장가드는 것

 

집짓는 제비 3수

巢燕 

愛爾年年訪舊栖

含以昆蟲屋以泥

應知秋社飛歸日

顧笑春天客雁啼

" 사랑스레 너 해마다 옛 집을 찾아와서

곤충을 잡아먹고 진흙으로 집을 짓네

알겠노라 가을 되면 돌아가는 날에

봄 하늘에 가는 기러기를 돌아보고 웃으리라."

每年春社定新栖

費却溪頭幾點泥

卵育莫非勤苦力

群雛何意索蟲啼

" 해마다 봄 사일(社日) 이면 새 집을 정하니

시냇가 몇 점 진흙 허비 하였던가

알 낳아 새끼치니 괴로운 일이건만

뭇 새끼는 어찌하여 벌레만 달라 매달리나."

雛皆索飯守其栖

出沒頭邊落片泥

待得雙翎毛羽長

快辭簾幕高飛啼

" 새끼는 먹을 것 기다리며 집을 지키는데

드나드는 바람에 진흙 조각 떨어진다

두 날개에 털이 모두 자라나면

염막을 떠나 높이 날며 울리 리라."

 

평안도 감사로 계실때 지은 詩

 

평안도 감사겸 평양부윤 으로 계실때 능라도,모란봉, 을밀대,등 평양의 명승지와 평양 지방의 풍속 을 31수의 칠언절구로 읊은 詩이다

부벽루(浮碧樓)

원문

十里松沙一帶川

四時雲物此樓前

長笛弄殘江月白

鶴邊疑下御風仙

 

번역

" 십리되는 장거리에 솔밭 모래밭이 한 일대에 가득하니

사시(四時) 로 좋은 경치가 루각에 가득 하네,

피리소리는 그처지고 강변에 달빛만 명랑하니

학(鶴)을 탄 신선(風仙)이 날아 오는 듯 하구나,"

 

을밀대(乙密臺)

天仙玉笛曉徘徊

錦繡山前乙密臺

鶴馭無蹤寒月白

滿江紅葉自生哀

" 신선이 옥피리 불며 새벽에 돌고 도니

금수산 앞 을밀대 이더라

학을 탄 신선은 자취도 없고 차가운 달빛만 하얀데

강에 가득한 붉은 나뭇잎 저절로 슬프진다 ".

 

箕城三十韻

금수산(錦繡山)

奇紋一朶拭淸霜

織女輕梭費七襄

收拾千林紅錦段

願爲歸補舜衣裳

" 한 떨기 기이한 무늬 많은 서리 씻어내고

직녀의 가벼운 북질 일곱 자리 옮겼네

숲 속에 널려 있는 붉은 비단 거두어서

순 임금 옷을 지어 들이고자 하노라 ".

 

능라도(綾羅島)

春羅拂木爛生華

雨緯煙經百態加

疑是越溪明月夜

半粧仙女浣輕紗

" 봄비단 물에 씻음에 광채 더욱 빛나서

가로로 비 맞고 세로로 연기 받아 모든 형태 갖추었네

시내 건너 달 밝은 밤에 반쯤 화장한 선녀가

얇은 비단을 빨래하는가 의심 하노라 ".

 

모란봉(牧丹峯)

仙峯一朶鎭江城

滿壁雲霞倒水明

莫道春來花草少

愛他將此牧丹峯

" 신선봉 한 떨기가 강가에 성을 진압하니

층벽에 가득한 구름과 놀이 물 속에 거꾸로 비쳐저 밝도다

봄 되어도 화초 적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장차 이 모란봉을 사랑 하리라 ".

 

청류벽(淸流壁)

蒼壁丹崖萬疊浮

白雲紅樹倒淸流

山高月少杖來興

不減蘇城舊日遊

" 푸른 절벽과 붉은 벼랑이 만 겹이나 떠 있는데

흰 구름 붉은 나무 맑은 흐름에 거꾸로 비치노라

산 높고 달 작은데 지팡이 짚고 찾아 온 흥치가

소선(蘇仙) 의 옛적 놀이에 못지 않노라 ".

 

기린굴(麒麟窟)

仙人前夜宿何山

古窟煙深曉月彎

怊悵玉麟飛不返

白雲流水洞天寒

" 신선이 어제 밤에 어느 산에 주무셨던고

옛굴에 연기 자욱하고 새벽달 둥근데

서럽도다 기린은 가드니 돌아 오지 않고

흰 구름과 흐르는 물 동네만이 차가워라 ".

 

조천석(朝天石)

嘶風麟馬上芝田

明月歸雲不記年

老石苔斑江水冷

洞天無影朗吟仙

 " 인마(麟馬)가 바람 따라 울며 지전(芝田)에 오르니

달 밝은 밤 구름타고 돌아간지 해를 알 수 없구나

오랜된 돌이끼 무늬 엉키고 강물 차가운데

동내엔 시 읊는 신선의 그림자도 없더라 ".

 

문무정(文武井)

長秋雨濕殘苔紋

文武井名故老云

欲弔龍治千古恨

永明寺北起愁雲

" 가을 내내 비에 젖어 쇠잔한 이끼 무늬 엉키었는데

문무 정이라고 옛 노인들은 말 하더라

용치의 천고의 한을 조문(弔問)하고자 하니

영명사 북쪽에 시름 간직한 구름 일어나더라 ".

 

단군사(檀君祠)

檀君開國正茫然

東土耕桑賴萬年

城郭已非仙鶴遠

古祠殘月鬼煙

" 단군께서 개국하신 지 실로 아득하구나

동국의 농사가 힘입어 온지 만년의 세월

성곽은 이미 변하고 선학 같은 모습은 멀어져서

옛사당 새벽달밤에 귀신만 우노라 ".

 

숭인전(崇仁殿)

千聖心明禹範篇

八條遺敎至今傳

淸風一片三韓土

萬古彝倫日月懸

" 옛 성인의 마음 밝힌 홍범(洪範)과

팔조목의 끼친 가르침 지금까지 전하였다

맑은 바람 한 조각 삼한의 땅에

만고에 변치 않은 인륜(人倫) 도덕이

일월처럼 밝게 달려있네 ".

 

기자묘(箕子墓)

淸秋埋玉此山深

白馬朝天恨莫尋

千古浿江霜後月

也明當日不臣心

" 맑은 가을 이 깊은 산에 옥을 묻으시고

흰말 타고 주 나라에 조회 하려던 마음속에 맺힌 한은

찾을 곳 없고 천고에 끊임없이

흐르는 대동강에 비치는 서리 뒤 달이

그 때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마음을 밝히리라 ".

 

정전(井田)

平蕪十里井田痕

流水浮雲八九村

日暮牛羊南畝上

勸耕遺化至今存

" 십리에 뻗은 거친 들판이 정전의 자취

흐르는 물과 뜬구름 여덟 아홉 마을

해 저무는 남쪽이랑 위에 풀을 뜯는 소와 양떼가

농사를 권장하던 끼친 덕화가 지금도 남아 있네 ".

 

기자정(箕子井)

井字田中十丈淵

靈源一脈湧涓涓

元來淸濁關治亂

何讓周家潤德泉

" 정자(井字) 모양 밭 가운데 열 길 늪 있어서

신령스러운 물 근원이 끊임없이 솟아나더라

처음 부터 맑고 흐린 것이 정치의 잘 잘못에 관계되나니

주 나라의 덕을 빛내는 샘에 못할 게 무엇인가 ".

 

영숭전(永崇殿)

花落荒臺夕照紅

行人說是故行宮

何年黼座移宗府

掩淚遺民泣不窮

" 거친 대(臺)에 꽃 떨어지고 저녁빛 붉은데

길손이 옛 행궁(行宮)이라고 얘기하더라

어느 해 보좌 옮기어 나라 망하니

눈물 가린 끼친 백성 울음 끝이 없더라 ".

 

영명사(永明寺)

一聲疏磬拂香薰

淸曉僧來禮白雲

水月恒沙心眼淨

宦情於此減三分

" 한 소리 경쇠소리 향기를 떨치니

맑은 새벽 중이 와서 흰 구름 헤치고 예배하더라

물 속에 비친 달과 항하의 모래처럼 마음 깨끗하니

벼슬하려는 마음 삼분이나 강해졌네 ".

 

백은탄(白銀灘)

貪泉一歃爽心神

千古廉風晉有人

笑他求利區區者

休愛灘名是白銀

" 탄천(貪泉)을 한 번 마시면 마음이 상쾌하니

천고에 청렴한 사람은 진나라 오은지더라

구구하게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 정말 우습구나

여울 이름이 백은이라해서 사랑하지 말라 ".

 

덕암(德巖)

奇巖屹立費神工

下有衝波屈曲通

居民指點名爲德

也取千年捍水功

" 기이한 바위 우뚝 솟은 것은 귀신의 조화인 듯

밑에는 구불구불 물결을 통했구나

그 곳 사람들이 덕암(德巖)이라 이름하니

아마도 천년 긴 세월 물을 막아준 공로가 있기 때문이리라 ".

 

주암(酒巖)

古穴淸香動麴神

津津靈液卽醺人

巖間點滴流霞色

留帶仙翁醉後春

" 옛 구멍에 맑은 향기가 누룩의 신령을 움직여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신령스러운 물이 사람을 취하게 하더라

바위틈에 스며 흐르는 물방울 유하(洧霞)의 빛이

신선의 취한 봄빛을 간직하고 있구나 ".

 

연광정(縯光亭)

長江如練色凝霜

濕翠霏紅映晝堂

入夜波心寒月白

玉山銀柱爛生光

" 강물은 비단을 익혀 바래는 것처럼 서릿빛 나고

푸른 안개와 붉은 놀이 화당(畵堂)에 비치더라

밤이 되어 물 속에 비친 차가운 달빛

옥산과 은기둥이 찬란한 광채(光彩)나더라 ".

 

읍호루(揖灝樓)

十里松沙一帶川

四時雲物此樓前

長笛弄殘江月白

鶴邊疑下御風仙

" 날아갈 듯한 높은 누(樓)가 티끌 세상과 떨어져서

서산의 청정(淸淨) 기운 모조리 끌어왔네

해는 지고 저녁 연기 만정(萬井)에 일어나니

주렴에 가득한 무르녹은 푸름이 그림처럼 열리더라 ".

 

쾌재정(快哉亭)

三山爽氣此亭高

詩酒登臨第一豪

怳惚仙風生兩腋

十洲笙鶴倘相招

" 삼산(三山)의 상쾌한 기운 이 높은 정자에

올라서 시 읊고 술 마시니 제일 호기롭다

황홀하게 신선의 바람이 양쪽 겨드랑이에 생기니

십주의 생학이 혹이나 서로 부를런지 ".

 

풍월지(風月池)

荷花香盡土花平

風月池荒古礎傾

十二瓊欄春雨歇

柳城兒女不勝情

" 연꽃 향기 다 하고 이끼 넓게 끼었는데

풍월지는 황폐되어 옛 주춧돌 무너져서

열두 구슬 난간에 봄비 그치니

유성(柳城)의 아가씨가 정을 이기지 못하더라 ".

 

봉황대(鳳凰臺)

梧葉春生曉雨懸

鳳凰飛去古臺天

三山二水依然在

詩酒何人是謫仙

" 오동잎에 봄기운 생겨 새벽비 오는데

봉황새는 날아가고 옛 대(臺)만 남았구나

삼산과 이수는 여전히 있는데

시 읊고 술 마시는 어느 사람이 적선(謫仙) 이런고 ".

 

영귀루(詠歸樓)

淸流沐髮振新衣

想像冠童詠以歸

春來倘得風雩興

樓外澄湖亦一沂

" 맑은 흐름에 머리 감고 새옷을 떨치니

생각건대 어른과 아이들 시 읊고 돌아오리라

봄되어 혹시나 무우(舞雩) 흥을 얻는다면

누(樓)밖에 맑은 호수가 또한 기수(沂水)일 것이다 ".

 

만경대(萬景臺)

臺在蒼茫積氣中

八窓高壓海門通

晴來萬景俄殊狀

此境誠難晝出工

" 대(臺)가 아득한 맑은 기운 속에 쌓여 있으니

여덟 창이 높이 해문까지 통하였네

날이 개임에 만가지 경치가 갑자기 변하는 모습이

정말 공교로운 그림으로도 나타내기 어렵더라 ".

 

석호정(石湖亭)

海市雲煙滿載廻

四年重把石湖桮

沙鷗倘記當時伴

亞使今爲太守來

" 바다와 도시의 경치 가득 싣고 돌아와

사년 만에 거듭 석호경 술잔을 잡았노라

사구(沙鷗)야 혹시나 그 때에 함께 놀았던 일 기억하느냐

그 때의 아사가 지금은 태수가 되어서 왔노라 ".

 

장춘각(藏春閣)

箕城兒女有餘音

月落湖平江水深

唱到當時金縷曲

風流不減少年心

" 기성의 아가씨 소리는 남아 있는데

달은 지고 호수 잔잔하여 강물 깊은데

금루곡을 부르는 것을 보니

풍류가 소년 때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겠노라 ".

 

선연동(嬋娟洞)

瑤箏錦瑟化寒灰

環佩聲殘夜月哀

怊悵暮山雲雨地

香名不與骨俱埋

" 구슬 비파와 비단 거문고가 차가운 재로 화하여

패옥소리 끊어지고 새벽달만 슬픈데

서럽도다 어두운 산 운우하던 땅에

향기로운 이름이 뼈와 함께 묻히지 않으리라 ".

 

보통문(普通門)

箕城形勝最玆門

鎖鑰千年固我藩

自是萬夫開不得

肯敎西賊逼重關

" 기성(箕城)의 웅장한 모습은 이 문이 으뜸이라

천년 동안 잠가서 우리 울타리를 굳게 지켰네

이로부터 만인이 열라해도 되지 않으니

어찌 감히 서쪽 오랑캐가 이 관문을 침노할 것인가 ".

 

패강사(浿江詞)

春江花落鶬鶊鳴

江上女娘香步輕

無限春來相別恨

拾花不語更含情

" 봄강에 꽃 떨어지고 꾀꼬리 우는데

강 위에 아가씨들 발걸음 가볍구나

봄은 왔으나 이별의 설음 한량 없어서

말없이 꽃을 주우며 다시 정을 머금더라 ".

 

용당에서 우연히 읊다

원문

百尺堂開百仞江

龍涎蜃氣抱南窓

紅塵萬丈消融處

高興淸標已滿腔

번역

" 백 척 높은 집이 백 길 강 위에 있고

용의 침 조개 기운이 남창에 엉키었네

만 길 되는 붉은 티끌 씻는 자리에

높은 흥취 맑은 기운 뱃속에 가득하다 ".

 

귀양 온 김구경에게 주다

赤葉黃花欲暮秋

客中佳節水同流

故人何處添新恨

羌笛胡歌月滿樓

" 붉은 잎 누런 꽃 가을은 저물려 하는데

나그네 길 좋은 계절 물과 함께 흘러가네

친구는 어디에서 새로운 한 더하는가

오랑캐 젓 대 되놈 노래 누에 달빛 가득 하도다 ".

 

거제 무이루 五言律詩

古島衣冠異

元戎號令神

葦航通北路

獷俗接東隣

海晏妖氛息

時淸化日新

一區煙火足

盡是太平民

" 옛 섬에는 의관이 다르고

원수(元帥)의 호령은 귀신 같구나

뱃길은 북쪽으로 통해 있는데

오랑케 풍속은 동쪽에 닿았더라

바다 고요하니 요사스런 기운이 잠자고

시대가 청명하니 햇빛 새로워라

한 지역 살림살이 넉넉하니

모두가 태평시절 백성이라."

1425년을사(세종7년)거제도 무이루에서 敬齋 河演씀

무이루(撫夷樓)2

" 뭇 산은 바다에 꽂혀 얕은 듯 깊으지고

잠깐 새에 개이더니 다시 쉬이 그늘지네

밤배에서 누군가 피리 부는 소리

비바람 가득한 배에서 늙은 용이 읊는 듯하네".

1425년을사(세종7년)거제도 무이루에서 敬齋 河演씀

詩 출처는 여지승람에서 나왔으며 또 팔도강산 명성시선에 실려 있다고 함

 

 

自詠(자영/혼자 읊조림)

少 也 潛 心 學 聖 賢

老 來 猶 未 慕 神 仙

不 敏 自 知 難 進 就

徒 然 慷 慨 讀 遺 編

 
젊어서는 마음 다해 성현의 가르침 배웠으나,

나이 들어 가르침 따라 신선처럼 살지 못하네.

공업(功業) 이루기 어려움 이제 비로소 깨달아,

부질없이 슬프게 한탄하며 옛 글을 읽는다

 

경상도 관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문효공(諱 河演)할아버님께서 智異山중이 새로난 茶를 보내주기에 茶를 드시고 茶의 뛰어난 색향미를 읊은 시입니다

원문

智異山僧送 新茶

晉池風味臘前春

智異山邊草樹新

金屑玉糜煎更好

色淸香絶味尤珍

 

번역

" 진지풍미(晉地風味)는 납전의 본인데

지리산가의 초목이 새롭네.

금가루 옥싸라기 달이니 맛이 좋고

빛깔 맑은 향기 뛰어난 맛이 더욱 진기 하네."

 

강릉 제영

渺渺城如斗

茫茫水接天

" 아득한 성은 말 만치 작고

망망한 물은 하늘에 닿았네

 

인제 고산성(麟蹄古山城)

衆山深邃絶輪蹄

一路高低傍石溪

"뭇 산이 깊숙하여 윤제(輪蹄)가 끊어지고

한 길 높으락 낮으락 돌 개울 옆으로 지나간다.

 

인제군에서 발견한 詩

 

"많은 산들이 깊고 멀어

수레와 말탄사람 오는이 없고

한가닥 길만이 돌개천을 따라가네’

 

일중 김충현 서집에서 새로 발견한 詩

양주원(楊州園)

楊州園裏柏

今歲又兮來

茶茗無調嚼

胸腸一谿開

양주 뜰의 잣나무

올해가 또 오는구나

차는 맛 볼 수 없지만

가슴에 큰 냇물 생겼네

 

문효공께서 동생결(潔인천군사)에게 보낸 詩

원문

弟兄何處共開顏

西望仁山眼更寒

忽有音書來示問

病窓遲日寂寥間

吾家荊樹早春隳

今遣南州第一枝

祇願仁風吹好澤

遍施雨露洽紛披

번역

"형제가 어디에서 만나 함께 웃으리

서쪽 인산 (인천)바라보니 눈이 시리네.

문덕 날아 온 문안 편지 받고 보니

봄날 병실 안이 쓸쓸 하던 참이었네

우리 집 모형(牡荊)나무 이른 봄에 시들더니

이제 한 가지를 남쪽으로 뻗치었네.

바라건데 어진 정사로 좋은 혜택 베풀어서

비나 이슬과 같이 사방을 흠뻑 적셔주게."

 

오언절구

荊樹春將晚

鴒原草欲生

蘇山明月迥

毋岳白雲橫

아우 인천군사(潔)에게 부치다

" 형나무(荊)에 봄은 점점 깊어지고

언덕에 할미 꽃이 돋으려 하네

소래산(蘇萊山)위 밝은 달은 멀리 떠 있고

무악산(毋岳山)에 흰 구름 비껴어 있노라

세종3년 1421년 경재 하연

 

아들 우명(友明)을 전쟁터에 보내면

 

세종31년(1449년)8월 중국에 북쪽에 오랑케 경보(警報)가 있으므로 임금께서 걱정하여 장수(將帥)를 보내어 방비하게 하였다 선생 자신이 정승 지위에 있어 의리상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여야 하겠으므로 아들을 보내어 군대를 따라가게 하고 시를 지어 격려 하였다.

腥膻萬丈聳乾坤

氣盪神州日月昏

窟穴嶙峋揷西北

數種接我爲寇門

豈啻備患乃薄伐

策在撫民兼飭軍

主將金學士

尹氏奇才又好文

汝亦儒家子

奮忠佐幕終佐君

以我白髮殘生䑛犢情深

拭淚嗟臨分

雖然身居上柱國

宵旰同憂大義存

但汝淸修遠聲色

其庶乎不辱親孝行

敦御宴罷悲歌發

楓林映夕曛

旌旗飄揚隨孤蹇

風吹驛樹飛寒雲

" 만길 비린내 기운이 솟아올라

신주(神州)에 가득하니 일(日) 월(月) 이 캄캄하다

오랑케 소굴이 서북쪽에 있어서

우리와 맞닿아 적이되고 있었다

어찌 근심을 예방할 뿐 정벌(征伐)을 소홀히 하리요

그 계획은 백성을 어루 만지고 군대를 신칙 하는데 있다

주장인 김학사는 윤씨(尹氏)같은 재주로 문학을 좋아하고

 너 역시 유가의 아들로 막부에 보좌하여 끝까지 임금을 보필하라

내가 백발 남은 여생으로 어미 소가 송아지 핥아주는

사랑으로 눈물 흘려 보내노라

그러나 자신이 상주국에 있으므로 소의간식(宵衣肝食)하시는

임금님과 근심을 함께하는 의리 있으리

네 몸을 조심하여 성색(聲色)을 멀리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욕되게 하지 말라

임금이 주신 연회가 끝나자 슬픈 노랫소리 일어나니

단풍나무에 저녁노을 비쳐 온다

깃발 휘날리며 외로운 말을 따라가니

역 마을 나무 바람불어 찬 구름이 날아 간다."

몽유도원도(夢遊挑源圖)

조선 초기 화가 안견(安堅)의 대표적인 산수화 일본 천리대학 소장

1447년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명필이며 풍류객인 안평대군이 어느날 도원명의 도원경을 찾아드는 꿈을 꾸었다.
그 꿈에 흡사한 지금 서울 세검동의 무계에 터를 잡고 정자를 크게 지어 ‘무계정사’라 이름지었다.
그리곤 안견에게 꿈에본 도원경을 그리게 했다.
그것이 '몽유도원도’이다
이 조선조 최고의 명화가 임진왜란 때 왜인들에게 약탈되어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 있는 것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 때 잠시 빌려 전시되었다

그림 은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 세로 38.7cm, 가로 106.5cm.로 로그려져 있다.
내용은그림과 함께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해
하연(河演).신숙주(申叔舟)·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 당대 최고 문사들의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자필 찬시가 곁들여 있다.
그림은 1447년 음력 4월 20일에 그리기 시작하여 3일 만인 23일 완성되었다.
그림의 내용은 통상적인 두루마리 그림과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전개되어 있으며,왼편 도입부의 현실세계와 나머지 꿈속 세계의 대조적인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각 경물들은 분리된 듯하면서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으며, 특히 좌반부의 정면시각과 우반부의 부감법을 이용한 공간처리, 평원과 고원의 대조, 사선운동의 활용을 통해 자연의 웅장함과 선경(仙境)의 환상을 절묘하게 나타냈다.
운두준법(雲頭?法), 세형침수, 조광효과(照光效果)의 표현 등에서 북송대 이래의 곽희파(郭熙派) 화풍의 영향을보이고 있지만 이를 토대로 발전시킨 안견의 독창성이 잘 집약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후대의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유도 원도 찬詩

일본천리대에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 문효공 친필

이미지클릭 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번역

" 도원은 아득히 저 멀리 푸른 산 흰 구름 속에 있는데

흰 구름이 자욱하게 산을 감쌌네

복사꽃 화사하게 산천을 수놓았고

맑은 시내 굽이쳐 흐르는 곳 소나무 숲 속에 바람이 이네

큰 바위에 의지하여 집을 지어 놓으니 마치 옥동(玉洞) 의 선궁(仙宮) 같아

이슬 맺히고 안개 서린 곳 길 잡아드니 서쪽 동쪽을 가릴 수 없네

이 세상의 온갖 초목이 어우러져 있고

온통 꽃이요 대나무로 항상 푸른 곳

신선이 사는 곳이라 말하기도 하고 진(秦) 나라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옛 선비들이 이를 읊은 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네

왕자의 기상이 가을 하늘에 빛나고

유연 하게 꿈속에서 끝 없이 넓은 세상 노닐으셨다네

어디 쯤에서 학을 타고 오신 신선이신가

잠에서 깨어나 이모저모 묘사하니 기이하고 신비스러워라.

심오한 깃털과 묘한 분위기를 그 누구라 능히 펼쳐 낼 수 있겠는가

사람이 이처럼 아름답게 그려 낼 수 있을줄 어찌 알았으리오

수역(壽域) 누리며 오래오래 수는 세상을 몸으로 겪은 듯

복록(福祿) 남부러움 없이 누리 셨음이 잘 드러나있네.

맑은 놀이 멋진 감상 그 정취 고루 펴 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지곡(池谷) 의 솜씨 진정 훌륭함을 알았네

금계(金鷄) 소리 내니 하늘에 별이 나르고

밝은 달 반쪽이 오동나무 가지 끝에 걸렸어라

그 옛날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도 알고 보면

모두가 봉영(蓬瀛) 에서 살고 싶어던 심정을 읊은 것

비해옹(匪解翁)은 여전히 문단의 거두 이여라 ."

진산 하연 연량 삼가 씀

 

보물 제1405호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


세종 24년(1442) 8월에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 1418~1453)이 1416년 明에서 간행된 《동서당집고첩(東書堂集古帖)》에서 남송 영종( 南宋 寧宗)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얻자 그 시를 베끼고 그림을 그리게 하여 ‘팔경시권(八景詩卷)’을 만들고, 고려 이인로(李仁老)ㆍ진화(陳澕)의 소상팔경시를 붙인 뒤 이영서(李永瑞, ?~1450)에게 서문을 짓고 시에 뛰어난 여러 문사에게 청하여 오언ㆍ육언ㆍ칠언시를 짓고 쓰게 하였다. 당시 작시(作詩)한 사람은 조서강(趙瑞康)ㆍ강석덕(姜碩德)ㆍ유의손(柳義孫)ㆍ윤계동(尹季童)ㆍ안지(安止)ㆍ남수문(南秀文)ㆍ천봉(千峯)ㆍ이보흠(李甫欽)ㆍ신석조(辛碩祖)ㆍ성삼문 (成三問)ㆍ김맹(金孟)ㆍ최항(崔恒)ㆍ박팽년(朴彭年)ㆍ정인지(鄭麟趾)ㆍ안숭선(安崇善)ㆍ신숙주(申叔舟)ㆍ하연(河演)ㆍ김종서(金宗瑞)인데, 그중 천봉 만우는 詩學에 뛰어난 승려였다.
      ‘소상팔경’이란 중국 양자강의 지류 소강과 상강의 여덟 승경(勝景)으로 산시청람(山市晴嵐)ㆍ연사모종(煙寺暮鍾)ㆍ어촌낙조(漁村落照)ㆍ원포귀범(遠浦歸帆)ㆍ소상야우(瀟湘夜雨)ㆍ동정추월(洞庭秋月)ㆍ평사낙안(平沙落雁)ㆍ강천모 설(江天暮雪)이다.
    안평대군이 제작한 ‘팔경시권(八景詩卷)’의 자취가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으로 전하는데, 이영서의 서문에 그 개략이 적혀있다. `비해당’은 안평대군의 호이다. 또 박팽년의 『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 』에 실린 「제비해당소상팔경시권(題匪懈堂瀟湘八景詩卷)」이란 시제(詩題)를 보면, 이 시권이 뒤에 판서 윤휘 가(尹暉 家)에 소장되었고 맨 앞에 명(明) 옹정춘(翁正春)의 예서제자(隸書題字)가 있다고 적혀 있다. 현재의 시첩에도 옹정춘의 제자가 있고 이어 아래의 순서로 문사들의 시문이 실려 있다([ ]는 印文). 이 시첩은 소상팔경도라는 산수도를 전제로 한 화제시첩(畵題詩帖)으로서 조선시대 팔경시(八景詩)와 팔경도(八景圖)의 유행을 이끈 점에서 시학사(詩學史)나 회화사(繪畵史) 그리고 조선초기 서예자료로서 귀중하다.

    〈題字〉 “海宇奇觀 翁正春” [翁正春印] [壬辰狀元]
    〈序〉 “宣敎郞集賢殿副修撰知制敎經筵司經 魯山李永瑞錫類謹序”[李永瑞印][錫類][平昌世家][金坡雅詠]
    〈李仁老의 칠언절구 소상팔경시〉
    〈陳澕의 칠언율시 소상팔경시〉
   
〈칠언시〉 “左贊成晉陽河演淵亮書” [河演][淵亮][晉陽世家]
    〈오언시〉 “節齋金宗瑞”
    〈칠언시〉 “知中樞院事 河東鄭麟趾”
    〈오언시〉 “承政院都承旨 銀川趙瑞康”
    〈칠언시〉 “承政院右承旨 姜碩德” [碩德][姜氏子明]
    〈칠언시〉 “藝文提學 耽津安止”
    〈칠언시〉 “刑曹判書 竹溪安崇善”
    〈칠언시〉 “成均注簿 永陽李甫欽”
    〈육언시〉 “直集賢殿 鐵城南秀文景質“
    〈칠언시〉 “直集賢殿 鷲山辛碩祖”
    〈칠언시〉 “承政院左副承旨 柳義孫”
    〈칠언시〉 “集賢殿副敎理 㠉梁崔恒” [崔恒][貞父][㠉梁世家]
    〈칠언시〉 “集賢殿修撰 朴彭年” [朴彭年][仁叟][平陽世家]
    〈오언시〉 “承文院副敎理 昌城成三問” [成三問謹甫氏][夏山樵夫]
    〈칠언시〉 “集賢修撰 高陽申叔舟” [泛翁][與造物游]
    〈칠언시〉 “鈴平君 尹季童”
    〈칠언시〉 “校書校勘 盆城金孟”
    〈오언시〉 “千峯釋卍雨” [千峯][釋卍雨]


보물 제1405호 비해당소상팔경시첩에서 발취한 문효공 친필 차운한 칠언詩

비해당소상팔경시

원문

尺縞妙化工 八景開風致

匪懈雅亮縣銀河 奎光璧彩騰詩思 

山智水此性情 靜對晴窓更昭粹 笙鏞勝

逸蔚藍天 黼黻潤色瑠璃地 淑氣淋漓

軸欲濕 洞庭瀟湘傾漲膩 乾坤瀹澡精

吳楚英靈萃 淸槪雖遐邇 眞趣何同異 

心物理今猶古 悠悠想眄令軒輊 凌雲披

霧登龍門 一覽灑落無塵累 詠歌彷彿浴沂

 知誰舍瑟而言志  

左贊成晉陽河演淵亮書

번역

" 한자 흰비단에 공교로운 조화(造化).베풀어

소경 팔경 경치를 열어 놓았네

 비해당(안평대군)의 맑고 높은 격조  은하수 걸려 있고

문장이 크게 빛나 시상(詩想)이 떠오른네.

어진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있는 이  물,을 좋아함은 사람의정성

개인 창문 대해 보니 맑고도 순수하네

생용의 풍악소리 절간에 뛰어나고.

임금님을 보필하는 빛나는 문장 빛나는 곳에

화창한 기운이 스며들어 시축을 적시노라

동정호와 소상강은 윤택한 기운이 넘쳐나네.

하늘과 땅 정신은 전일(專一)하고 

오나라와 초나라 영령(英靈)들이 모두 모였네.

맑은 경치는 비록 멀고 가까움이 있으나

참된 흠치는 어찌 같고 다름이 있으리요

.인심과 물리(物理)는 고금이 같아서

유유히 경중(輕重)을 생각해 보도다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서 용문(龍門)에 올라가니

한번 보니 상쾌하여 세속 번뇌 없어지네.

읆고 노래함에 욕기흥(浴沂興)과 방불한데

그뉘가 비파(琵琶)연주 그만둔 뜻을 알리오"

左贊成 晋陽 河演(좌찬성 진양 하연)

 

병중에 우연히 읊다

三月十五日

天氣正和淸

昨夜風微爽

今朝雨乍晴

滿地淸鏡凸

欹樹錦雲明

髣髴曾公詠

浩然塵外情

"삼월 보름 날에

날씨는 바야흐로 화창하여라

어젯밤 바람이 산뜻 하더니

오늘 아침은 비마저 개었구나

땅에 가득히 맑은 거울 비쳐오고

빗긴 나무엔 비단 구름 명랑 하고

증공(曾公)의 읊조림 같아

호연하게 티글 밖 심정이라."

 

경재 선생은 1453년 8월 15일 향년78세를 일기로 많은 업적을 남기고 별세하시니 단종임금 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면서 3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다고 한다. 1454년 단종 2년에 문효(文孝)라는 시호가 내리고 문종의 묘정에 배향 되셨다.

좌의정 남지(南智)선생이 비문(碑文)을 짓고 1463년 세조 9년에 강희맹이 행장(行狀)을 지었다.경재(敬齎) 하연(河演) 선생은 태평성대인 태조 시대인 21세 때에 관직에 입문하여 76세에 영의정(領義政)의 벼슬을 물러날 때까지 무려 53년 동안 나라경영에 혼신의 심혈을 기울여 봉사하였으며,조선 개국이후 500여년 동안 청백리에 빛나는 157분 중에 한분이시며 조선의 초창기 국법 질서와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 지대한 공로를 남김으로써, 평화시대의 공복으로써 위대한 사표(師表)를 남기셨다.

여기 올린 글들은 경재선생문집의 일부이며 시간이 나면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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