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사공(觀察使公) 하형(河泂) 12세손
선생은 어린 시적부터 천품(天稟)이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시며 형제간의 우의가 돈독하셨다.다섯 형제가 함께 학업을 닦아 도학문장(道學文章)이 일세(一世)에 떨치시더니 형제 중 먼저과거에 올라 일찍 공직(公職)에 출사(出仕)하였다. 선생의 유택(幽宅)이 풍해도 안악부 산천군 산천면 독재산 아래에 있고 비문(碑文) 상석(床石)이 갖추어져 있으나 국토분단으로 이를 살필 수 없고 발이 미치지 못하여 자손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함이 가이없어 거창봉계(居昌鳳溪) 문중의 영모재(永募齋)에서 오랜동안 향화(香火)를 받들더니 이제 3문중이 뜻을 모으고 정성을 다하여 큰 집안이 살고 있는 남원 신월 옥계봉에 정성을 받쳐 선조의 설단(設壇)을 세워 받들고 있다. 이 설단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로 서로의 정의(情義)를 나누고 있다. 전략(前略).... 이곳에 설단하여 비분(悲憤)을 참고 봉영(封靈)코자 하오니 於是乎 조손(祖孫)이 서로 의지하고 천리신도(天理神道)가 감응함이 마땅 하니로다. 신단비(神壇碑)에 실기(實記)를 새기고자 후손들의 한 다음을 충효전가(忠孝傳家)함이여, 길이길이 빛나라. 남북이 막힘이여, 봉계에서 봉사(奉祀)터니 옥녀봉 양지바른 곳에 설단하고 새기노라. 짧은글 무딘비갈(碑碣)로 선영(先榮)을 기리도다. 진양하씨 대해(大海)를 향해 면면히 흐르거니 언젠가 다시 찾을 날 두 손 모아 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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