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판공 휘(諱) 주(澍)선조님의 묘소:전남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하미


 
하주(河澍) 14세손

 

사직공 14세손이며 대사간(大司諫) 휘 결(潔) 할아버지의 장자이신 참의공(參議公) 휘 금(襟)의 아들 7형제 중 셋째 아들이다제주판관(濟州判官)을 지내셨으며 그후손은 진도와 거제도 에서 살고 있다
공의 휘는 주(澍)이다. 제주(濟州)의 관덕정(觀德亭) 중수기(重修記)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제주는 본래 탐라국이니 우리나라 九 한(韓) 중의 하나였다. 신라 때에 처음으로 조공(朝貢)을 바치러 왔고 고려 초에 항복하여 나라가 현(縣)이 되었다 고려 말년에 기 황후(奇皇后)가 마음대로 목장(牧場)을 두었는데 명나라 때 다시 우리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제주는 바다 가운데 있어 땅 넓이가 약 五百리요 백성 가구수 가 八九千호요 기르는 말이 수만필인데 일본과 이웃하고 있어 방어하는 데 매우 어려움이 있었다. 양후찬(梁侯瓚)이 처음 가서 다스린 지 三년이 됨에 백성들이 크게 화합하게 되었다. 지방 세력가였던 고윤(高潤)등이 청하되「활쏘기 연습장이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졌으니 이것이 실로 우리 제주의 흠입니다」하니 양후찬이 옳다고 여겨 이를 통판(通判) 하공(河公)과 의논하여 재목과 공인(工人)을 모아 공사를 시작한 지 한달 못 되어서 준공하여 무예를 익힐 곳이 있게 되니 방비가 더욱 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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