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령공 휘(諱) 자감(自坎) 선조님의 묘소 : 경남 남해군 서면 남상리 유표산 707

고성현령공(固城縣令公) 하자감(河自坎)15세손

 

공의 휘는 자감(自坎)이요, 자는 수청(水淸)이요, 성은 하씨인데 본관은 진양이다. 진천부원군 시호 원정공(元正公) 휘 즙(楫)과 진산부원군 휘 윤원(允源)은 공의 6대. 5대 할아버님이시다. 고조부님 휘 자종(自宗)은 병조판서, 증 좌의정(贈左議政)이셨고, 증조부님 휘 결(潔)은 대사간(大司諫)이셨고, 조부님 휘 금(襟)은 공조참의이셨으며 선고님 휘 신(紳)은 현령이셨다. 선비 영천 이씨(永川李氏)는 영천군(永川君) 응(膺)의 따님인데 삼남(三男)을 낳으신 바, 공은 셋째 아드님이다.

선고께서 남해(南海) 현령이 되시매, 공이 부모님 따라 남해현에 와서 두 형님과 함께 부모님을 봉양하다가 무과(武科)에 올라 고성현령(固城縣令)을 지내셨기로, 묘가 남해현 서면(西面) 유포중리(鍮浦中里) 북등산 사좌(巳坐)에 있다. 마나님 진양 정씨(晋陽鄭氏)는 첨중추(僉中樞) 헌(憲)의 따님인데, 묘는 공의 묘소와 같은 곳에 있다.
공께서는 아들이 없어 맏형님 취 자파(自坡)의 아드님 휘 맹량(孟良)으로 후사(後嗣)를 삼았는데, 통덕랑(通德郞)이 되었다. 공은 딸 한 분을 두었는데, 대사헌 장수 이씨(長水李氏) 충걸(忠傑)에게 출가하였다. 손자로는 휘 유원(洧元)과 숭릉참봉 휘 한원(漢元)이 있다. 증손 이하는 적지 않는다.

공의 이력과 행적이 의당 전해짐 있었겠으나, 뒤에 임진왜란을 만나 남해가 혹심한 화를 입게 되자 자손들이 동서로 흩어질때 집에 간직해졌던 문헌이 흩어져 남음이 없고, 또 약간 남은 선대의 유적이 상세하지 못하므로, 다만 위와 같이 적어 뒷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