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공 휘(諱) 천수(千壽)선조님의 묘소: 경남 합천군 야로면 묵촌리 묵촌 1구

 

증좌승지공(贈左承旨公) 하천수(河千壽)16세손

영남(嶺南)의 중앙에 있어 원기(元氣)를 모은 고을이 합천(陜川)인데 가야(伽倻)는 그 진산(鎭山)이다. 이런 고로 합천에 이름난 사람과 착한 선비가 많았는 바 공은 그 중의 한 분이었다. 공의 휘는 천수(千壽)요 자는 이수(이수)이다 그 선대는 진주인(晋州人)인데 앞서 경기(京畿)의 인천(仁川)에 옮기어 살았고 또 야로(冶爐)로 이사하였는데 이곳은 합천의 속현(屬縣)이다 고조(高祖)님의 휘는 연(演)인데 의정부 영의정(領議政)을 지냤으며 문효(文孝)라는 시호를 받고 문종묘(文宗廟)에 배향되었다. 증조(曾祖)님 휘는 우명(友明)인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셨으며 효도로 이름나 삼강행실록(三岡行實碌)에 기록되었다 조부(祖父)님 휘는 철석(哲石)인데 호군(護軍)이었고 선고(先考)의 휘는 한우(漢佑)인데 사직(司直)이셨다.


선비(先비) 회원유씨(檜原兪氏)는 충순위(忠順衛) 사철(思哲)의 따님이요 절도사(節度使)익명(益明)의 증손인데, 1515년11월 28일에 공을 낳으셨다, 공의 성품이 인자(仁慈) 자상(仔詳) 화락(和樂) 단아(端雅)하고 효우(孝友)스럽고 돈목(敦睦)하여 향리(鄕里)에 처(處)함에 마음을 터 놓고 정성을 보이시며 물질로 거스르는 일 없었으니 참으로 변함 없는 군자이셨다. 마나님 선산김씨(善山金氏)는 예문과 직제학 증 호조판서 숙자(淑滋)의 현손녀요 정릉(定陵)참봉 영시(令始)의 따님이니 곧 점필재(점畢齋)문간공 김종직(文簡公 金宗直)의 종증손(從曾孫)이다 규범(閨範)이 있어 공을 내조 하였으며 능히 집안의 미풍을 살리셨다.


공이 1570년 6월15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56세였는데 그 해 12월 29일에 야로현 서쪽 무시랑(茂時郞) 신좌 을향(辛坐乙向)에 묻히셨다. 마나님 김씨는 1514년 12월 27일 해시(亥時)에 출생하여 1574년 12월 29일에 돌아가시니 향년이 61세였는데 이듬해 2월20일에 공의 묘소 왼쪽에 묻히셨다. 3남2녀를 두신 바 맏아드님 준(濬)은 사인(士人)최종윤(崔宗閏)의 따님과 혼인하여 2남 3녀를 낳으니 아들은 경함(景咸) 경항(景恒)인데 경항은 어리고 맏딸은 사인(士人) 정지윤(鄭之允) 다음은 이헌(李헌)에게 다음은 이동응(李東膺)에게 출가하였다. 둘째 아드님 혼(渾)은 천거(薦擧)로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거니와 충의위 어모장군(忠義衛禦侮將軍) 설광범(薛匡範)의 따님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경수(景受)는 무과에 올라 군수(郡守)가 되었으며 사인(士人) 박위(朴위)의 딸과 혼인하였고 다음 경량(景量)은 사인(士人) 김안경(金安慶)의 딸과 다음 경기(景紀)는 생원(生員) 한성진(韓聲振)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 다음은 경중(經中)이요 다음은 경현(景賢)이요 다음은 경달(景達)이요 딸은 어리다 셋째 아드님 개(漑)는 생원(生員) 한극복(韓克復)의 따님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경신(景新)은 어리고 딸은 사인(士人) 문경룡(文景龍)에게 출가하였다. 공의 큰 따님은 사인(士人)문응수(文應洙)에게 출가하여 1남을 낳으니 이름이 경호(景虎)인데 생원(生員)으로 찰방(察訪)에 천거되었고 둘째 따님은 충순위(忠順衛) 신호(愼浩)에게 출가하였는데 공보다 먼저 별세하였거니와 두 아들 선각(先覺) 공각(公覺)을 낳았다.


己亥년에 세마(洗馬:휘 渾)가 나에게 묘표(墓表)를 청하는 바 공은 나의 외가 어른이라 인척 관계가 있으며 지금은 외가가 쇠퇴하여 외가를 생각하는 정이 깊은 터에 명을 받고 마음이 슬프니 글이 서투르다 하여 사양하지 못할 일이라 드디어 일어나 명(銘)한다

땅은 신령스런 기운을모아 선인(善人)을 낳았거니와

태어나서 벼슬 없음은 또한 운명이어니

어찌 나의 퓌하고 버릴 바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