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士公 휘(諱) 수연(壽淵)선조님의 묘소 :  경남 창녕군 성산면 방동(방골)

處士公 하수연(河壽淵) 20세손

부군의 휘는 수연(壽淵)이요, 자는 여성(汝聖)이요, 성은 하씨요, 관향은 진양이다. 고려 사직 휘 진(珍)이 시조인데 이후 대대로 벼슬이 높았다. 九世에 이르러 휘 즙(楫)이 계시어 진천부원군에 봉해지시고 원정(元正)이라는 시호를 받고 호를 송헌(松軒)이라 하였는데, 이 분이 진산부원군 호 고헌(苦軒) 휘 윤원(允原)을 낳으셨고, 고헌 선생이 병부상서(兵部尙書) 목옹(木翁)선생을 낳으셨으니, 이상이 고려 말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분들이다.조선조에 들어와 휘 연(演)께서 세종조의 명상이 되었는데 이 분이 세상에서 일컫는 경재(敬齎)선생이다. 이 분이 증 이조참판 휘 효명(孝明)을 낳으셨다. 참판공은 인동현감(仁同縣監) 휘 복산(福山)을 낳으셨고, 현감공이 태인현감(泰仁縣監) 휘 징을 낳으셨고, 태인현감공이 종사랑(從仕郞) 휘 충로(忠老)를 낳으셨는데, 이상이 고조(高祖) 이상의 八世이다. 증조부,휘는 세온(世溫), 조부 휘는 응천(應千), 아버님의 휘는 구(龜)이요, 어머님은 인동 장씨이다.

부군께서 1564년에 태어났는데, 돌아가신 해는 알 수 없다. 묘는 경남 창녕군 성산면 방동(방골) 간좌(艮坐)에 있다.. 배위 달성 서씨는 탁립(卓立)의 따님인데, 묘는 쌍봉으로 모셔졌다.두 아드님의 휘는 일한(逸漢).일락(逸洛)이요, 네 손자 중 휘 금룡(琴龍).명룡(鳴龍) 및 통정대부 휘 우룡(遇龍)은 휘 일한(逸漢)의 아드님이고, 휘 광룡(光龍)은 휘 일락(逸洛)의 아드님이다. 여섯 분 증손 남녀 중 휘 세만(世萬)과 노중석.김경흠의 부인들은 휘 금룡의 소출이요, 휘 진백(晉伯)은 휘 명룡의 소출이고, 부사과 휘 만백(萬伯)은 휘 우룡의, 휘 선백(善伯)은 휘 광룡의 소출이다.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어느 날 후손들이 의논하여 이르기를 「지금에 와서 부군 세대로부터 떨어짐이 10여 대요, 햇수 벌어짐이 四백년이어서 끼쳐진 문적(文籍)이 거의 다 없어져 그 진상의 만일(萬一)을 얻을 방도가 없거니와, 부군의 후손 된 자의 가구수가 수백 호인데 곳곳마다에서 명망 있는 집안을 이루어, 가히 번성해 있다. 말하지 않을 수 없은즉, 엄연히 이 고을에 처음 들어오신 조상님의 묘소에 비석을 세워서 장래에 고징을 삼지 않아서야 되겠는가?」하고 공사(工事)를 시작하려 할 즈음에 나에게 비석에 새길 글을 맡긴다.

내 돌아보건대, 후손의 신분으로 글이 짧으나 감히 굳이 사양할 수 없으므로 드디어 족보에 의거하여 선후의 세계를 위와 같이 서술하였다. 그리고, 또 생각하건대, 세상에서 자손이 많고 적음을 논하는자 흔히 풍수설(風水說)이 들어맞는다고 여기나, 그 이치는 황당하여 믿을 수 없고, 다만 선세의 음덕이 명명중에 끼쳐진 것에 의하여 좌우됨이 예부터 증명되는 바이므로, 내가 부군께서 당일 반드시 음덕을 드리우셨음을 상상하고 더욱 사모하여 잊지 못하옵노라.

※이분이 임진왜란때  어머님을 모시고 피난 오셨다가 창녕군 고암면 계팔. 땅에 자리를 잡으신 입향조이시다 창녕군 계팔 ,신기동, 밀양군 무안면 고라리,밀양군 청도면 조천 출신은 이분의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