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부사(漆谷府事) 하덕후(河德후)23세손

공의 성은 하씨요 휘는 덕후(德후)요 자는 도경(道卿)이요 관향은 진양이니 증 사헌부 대사헌(贈司憲府大司憲)설창 선생 휘 철(雪창先生 諱澈)의 셋째 아드님 이시다, 고조의 휘는 무제(無際)인데 내금위 현신교위(內禁衛顯信校尉)요 증조의 휘는 광국(光國)인데 증 사헌부 집의(贈司憲府執義)다 조부의 휘는 홍달(弘達)이요 호는 낙와(樂窩)인데 증 승정원 좌승지(贈 承政院 左承旨)다 모친은 정부인 고령박씨(貞夫人 高靈朴氏) 신(紳)의 따님이시다  3대 의 증직(贈職)은 모두 공이 귀히되셨기 때문에 얻은 것이다. 공이 이조 현종 경술(1670)년에 나시어 일찍 경서에 힘쓰셨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셨었다. 숙종 임오(1702)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셨다 을축(1709)년엔 광양 현감(光陽縣監)에 제수되시어 밝게 변방 실정을 아셨으므로 엄한 형벌을 쓰지 않아도 이속(吏屬)이다 두러워하도록 하셨고 또 산업고 균전(均田)을 공평하게 처리하시어 나라의 부름을 받아 종사관(從事官)이 되시었다

경자(1720)년에 흥양현(興陽縣) 에 전보되어 치적이 높았으므로 어사(御史)가 아뢰기를 성품과 지식이 밝으며 지혜롭고 학문이 넉넉하여 일 처리에 민첩하여 일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물 흐르듯 거침이 없었다고 하였다. 영조 정미(1737)년에 평안도 우후(平安道 虞侯)가 되시었다 그 때 이 사성(李師晟) 이 병사(兵使)가 되어 왔었다. 그 뜻을 거역하셨더니 무신(1728)년 시험 보는 일로 무고를 당하여 재판(裁判)에 나아가게 되셨다. 조금 있다가 사성(師晟)이 파직되고 석방되시어 신해(1731)년에 승격하시어 칠곡 부사(漆谷府事)가 되시었다. 마침 큰 훙년을 당하였는데 정성을 기울여 백성을 잘 구제한 공적으로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졌다. 을묘(1735)년 저평현(저平縣)에 산적이 있어 왕이 걱정하여 특히 공을 보내서 무마하도록 명하였더니 두달 이 못되어 그 지방이 안연(晏然)하여졌다. 그 후에 창성 방어사(昌城防禦使)가 되셨다가 도리어 외직에만 계셨던 관계로 파직되셨다. 갑자(1744)년에 수직(壽職)으로 동지 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르셨다.

공이 본래 마음이 영정(寧靜)하시어 영고성쇠(榮枯盛衰)에 개념하지 않으셨으므로 이에 벼슬을 버리고 교향에 돌아가시어 백씨 양정재 덕망(養正齋德望)으로 더불어 도의를 강마하시니 남이 일컫기를 연당 양학(蓮塘兩鶴)이라 하였다, 갑술(1754)년 7월 10일 별세하시니 춘추가 85세였다. 안계 우강 유좌(安溪右岡 酉坐)에 안장한 것은 아버님 산소를 따르시게 함이었다.배위 정부인 창녕 조씨(貞夫人 昌寧曺氏)는 석하(錫夏)의 따님이시다, 1남 3녀를 두셨는데 아드님 대복(大復)은 통덕랑이었다. 사위님 임 우준(林宇儁) 정중복(鄭重復)은 다 통덕랑이었고 신 담(申담)은 영장(營將)이었다, 또 두따님이 계셨는데 사위님은 배현도(裵玄道) 변수사(水使)지건(至健)이다 대복(大復)아드님은 윤성(胤聖)재성(載聖)이요 사위님은 정효의(效毅) 김득수(金得壽)이다 우준(宇儁)의 아드님은 광리(光履) 광택(光宅)이요 중복(重復)의 아드님은 광소(光紹)요 담(담)의 아드님은 광서(光緖)요 현도(玄道)아드님은 정유(鼎儒)다 증현(曾玄)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이제 공이 가신지 3백  3심여 년이 되는 바 아직 비석 하나 세우지 못하였더니 후손 재영과 방손 문교부 이사관(文敎部理事官)태일(泰鎰)이 공이 살았을 때 벼슬이 종족(宗族)에서 빛났으므로 묘에 석물을 세워 오래도록 그 유적을 표몰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함을 생각하여 비석을 세우고 또한 방손 유즙(有楫)이 그 문헌을 수집하여 글을 청하는 폐백을 가지고 왔으니 그 또한 가상(可尙)한지라 이에 명(銘)을 쓴다.

무과에 올라 선전관이 되셨고 동남(東南)에 두루 벼슬하셨네

위협하지 않고도 화합하였고 싸우지 않고도 이기셨네.

균산(均算)을 잘하시고 해결하심이 물 흐르는 듯하였네

칠곡에서는 유애비를 세웠고 흥양에서는 어사가 그 우수함을 표창 하였네

영달(영達)과 쇠퇴(衰退)가 무슨 상관 있었는고? 인륜에 떳떳함이 즐거움이었네

천수는 80이 넘어 연당의 두 학과 같으셨네

묘에 비석에 세우지 않는다면 기록을 전하기 어렵거니와

내 말 또한 간절하니 새기기를 엷게 하지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