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열부(孝烈婦)성주이씨(星州李氏)行狀

효부 이씨(李氏)는 병하(炳夏)의 따님이다. 그 선대는 성주인(星州人)이다. 중세(中世)에는 창녕(昌寧)에서 살았다. 나이 18세에 같은 고을 진양 하은규(河銀奎)와 혼인하였다. 은규 아버님은 덕일(德佾)이다. 효부가 시집갔을 때 집이 심히 가난하여 남편은 나무하는 것으로, 자신은 길쌈으로 업을 삼아 가계를 이어나갔다.은규의 형님은 솔권하여 일본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지 오래였다. 몇 해 후에 시아버님이 악한 병환에 걸리니, 효부 이씨가 간호에 정성을 다하고 약과 음식을 원대로 아니 함이 없었다. 병이 위독해져 고름과 피가 나와서 악한 냄새가 나니, 보는 사람이 모두 코를 막고 피하였으나, 효부 이씨는 아침 저녁에 때를 어기지 않았고, 공양해 모시기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 손수 수건으로 그 피고름을 닦아 내고 자주자주 깨끗이 세탁하여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였으며, 시아버님이 잡수시고 남은 음식은 이씨가 맛있게 먹었다.

시누이가 시아버님과 같은 병으로 10 수 년 신음하고 있었으나, 한 번도 싫어하고 지루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직 구호하는 데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여 시아버님이 혹시 불안해 하실까 두려워할 뿐이었다. 시아버님이 별세하니 그 애통함을 지극히 하고, 조석 제전에 예의를 다하니 마을 사람들이 그 효성을 아름답다 여겨 술밥을 갖추어 상을 주었다고 한다.지금에 와서 시가집 여러 일가들이 이 떳떳한 유적이 혹시 인멸할까 두려워하여 서로 더불어 돈을 모아 마을 옆에 비석을 세우고자 하매, 재종제 봉규(鳳奎)가 그 사실을 기록하여 나에게 와서 글을 청한다. 내 그윽히 생각컨대, 아들과 부모와의 관계는 천륜(天倫)에 속한 일인데도 세상 인륜이 쇠퇴해지매 효도로 이름이 드러난 사람이 실로 드문데, 더구나 며느리와 시부모님은 의리로 합한 것이라 그 효도하기가 더욱 어려운데도 이씨 효부는 능히 효도를 다하셨으니, 그 어찌 여자로서 남의 못하는 일을 하신 분이 아니겠는가? 비석에 새기어 세상 사람들의 규범이 되게 해야 하리로다. 인하여 명(銘)한다.

아! 효부이시여, 행실이 특출하였도다. 옛날에 있어서도 오히려 어려운 일이거든, 하물며 지금의 야박함에서랴? 나라에서 정문 세우지 못했음을 한하지 말라. 이 비가 오히려 백세토록 전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