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열부(孝烈婦)진양 강씨 강씨(姜氏)는 진양의 명망있는 집안인 바, 휘 원범(元範)은 진주에서 세거(世居)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가문의 음덕으로 정략장군이 되고 아드님 정국(靖國)의 공훈으로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증직되었다. 이 분이 사직 여인보(呂仁甫)의 따님과 성주에서 혼인하여 강씨를 낳아 진양 하공 휘 호(濩)에게 시집보냈다. 하공의 자는 태화(太和)이다. 창녕에서 살았는데, 사람됨이 청려하여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고 과거급제를 뜬 구름같이 여기셨다. 강씨가 나이 50이 못되어 공의 상을 당하매 상제(喪制)를 마친 뒤에도 3년동안 죽만 잡수시고 소복을 하고 지내시니, 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이 그 마을을 찾아 그 일을 아름답다 여겨 조정에 알려 절부 정문(節婦旌門)을 세우게 되니, 고을과 이웃에서 모두 강씨를 절부(節婦)라 일컬었다. 하늘이 선인(善人)을 내림에 어찌 한 곳에 편중하게 하셨는고?…(궐문)…곽태는 비록 어질었으나 벼슬을 받지 못하였고, 양홍(楊鴻)이 이미 죽었으나 맹광(孟光)은 절개 지켰네. 정문(旌門)의 포상은…(궐문)…나의 비명(碑銘)이 거짓되지 않으니, 백개라도 부끄러움 없네. 사직공 16세손 휘 호(濩)의 배위 진양강씨지려 :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 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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